노영순(盧永淳)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178C601C21CB1146X0 |
이명(異名) | 노영순(盧永錞) |
시호(諡號) | 경숙(敬肅) |
생년 | 1146(인종 24) |
졸년 | 1208(희종 4) |
시대 | 고려중기 |
본관 | 교하(交河) |
활동분야 | 관료 > 대신 |
출신지 | 기계현(杞溪縣) |
[상세내용]
노영순(盧永淳)
1146년(인종 24)∼1208년(희종 4). 고려의 대신(大臣). 본관은 교하(交河). 일명 노영순(盧永醇). 기계현(杞溪縣) 사람(주1)
.
의종 때에 내시(內侍)로 들어가 합문지후(閤門祗候)가 되었는데, 그때 동북면병마사 및 춘주도안찰사(春州道按察使)가 경기‧이천‧안협‧동주‧평강‧동계‧영풍‧의주‧서해‧곡주일대에 도둑이 횡행하여 이를 소탕해줄 것을 청하므로, 왕명에 따라 병부낭중 김장(金莊) 등과 함께 나가 도둑의 괴수 이쌍(異雙) 등을 잡아 죽이고 그 일당을 토평하였다. 이 공으로 뒤에 승선(承宣)에 올랐다.
1170년(의종 24) 정중부(鄭仲夫)의 난 때 호종하였던 신료들을 비롯하여 많은 문신들이 화를 당하였으나, 본래 무인가(武人家)의 자손이며 평소 무신들과 친하게 지냈던 관계로 화를 면하였다.
명종이 즉위한 뒤 정중부 등과 함께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올랐으며,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로 있다가 죽었다. 시호는 경숙(敬肅)이다.(주2)
본관 |
『씨족원류』에 의하면 원래 교하노씨는 경주의 기계현(杞溪縣)에서 유래되었는데, 경기도 파주 근방의 교하로 이전하면서 교하를 본관으로 삼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
의종 때에 내시(內侍)로 들어가 합문지후(閤門祗候)가 되었는데, 그때 동북면병마사 및 춘주도안찰사(春州道按察使)가 경기‧이천‧안협‧동주‧평강‧동계‧영풍‧의주‧서해‧곡주일대에 도둑이 횡행하여 이를 소탕해줄 것을 청하므로, 왕명에 따라 병부낭중 김장(金莊) 등과 함께 나가 도둑의 괴수 이쌍(異雙) 등을 잡아 죽이고 그 일당을 토평하였다. 이 공으로 뒤에 승선(承宣)에 올랐다.
1170년(의종 24) 정중부(鄭仲夫)의 난 때 호종하였던 신료들을 비롯하여 많은 문신들이 화를 당하였으나, 본래 무인가(武人家)의 자손이며 평소 무신들과 친하게 지냈던 관계로 화를 면하였다.
명종이 즉위한 뒤 정중부 등과 함께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올랐으며,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로 있다가 죽었다. 시호는 경숙(敬肅)이다.(주2)
시호 |
『고려묘지명집성』에 수록된 [高麗國故刑部尙書龍虎軍上將軍盧君墓銘]의 "군의 이름은 노탁유(盧卓儒)이고, 기계현(杞溪縣) 사람이다. 아버지 노영순(盧永醇)은 참지정사 상서좌복야(叅知政事 尙書左僕射)로 시호가 경숙공(敬肅公)으로 추증되었다." 참고. 그런데 노영순의 시호가 『신증동국여지승람』 21권 경주부편과 『고려사』열전 노영순편에는 의정(懿貞)으로, 『씨족원류』 교하노씨편에는 의정(懿定)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는 묘지명을 따른다. |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씨족원류
신증동국여지승람
高麗史節要
씨족원류
신증동국여지승람
[집필자]
박옥걸(朴玉杰)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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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2012-07-20 | 시호 참고문헌 씨족원류 및 신증동국여지승람 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