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유일(咸有一)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568C720C77CB1106X0 |
자(字) | 형천(亨天) |
생년 | 1106(예종 1) |
졸년 | 1185(명종 15) |
시대 | 고려중기 |
본관 | 양근(楊根) |
활동분야 | 관료 > 관인 |
부 | 함덕후(咸德侯) |
5대조 | 규(規) |
[상세내용]
함유일(咸有一)
1106년(예종 1)∼1185년(명종 15). 고려의 관인. 본관은 양근(楊根). 자는 형천(亨天). 태조공신(太祖功臣) 규(規)의 5세손이며, 상의 봉어동정(尙衣奉御同正) 함덕후(咸德侯)의 아들이다.
1135년(인종 13) 서경반란을 평정할 때 서리(胥吏)로 종군하여 공로가 있었으므로 발탁되어 선군기사(選軍記事)가 되었다. 청빈하였으며 공무에 충실하였다.
추밀원사(樞密院使) 왕충(王冲)의 천거로 내시(內侍)로 들어와 군주(軍廚: 禁軍의 식사담당)를 담당하여 업무를 잘 수행하였다. 뒤에 보성의 수령이 되어서도 치적이 있었다.
명종 때 병부낭중(兵部郞中)‧상서좌승(尙書左丞)을 거쳐 공부상서로 퇴관하였다. 일찍이 의종 때는 교로도감(橋路都監)이 되어 도성 안의 무당과 음사(淫祠)가 많아 민심을 현혹시키므로 음사는 모두 불지르고 무당은 교외로 내쫓아 미신을 배척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135년(인종 13) 서경반란을 평정할 때 서리(胥吏)로 종군하여 공로가 있었으므로 발탁되어 선군기사(選軍記事)가 되었다. 청빈하였으며 공무에 충실하였다.
추밀원사(樞密院使) 왕충(王冲)의 천거로 내시(內侍)로 들어와 군주(軍廚: 禁軍의 식사담당)를 담당하여 업무를 잘 수행하였다. 뒤에 보성의 수령이 되어서도 치적이 있었다.
명종 때 병부낭중(兵部郞中)‧상서좌승(尙書左丞)을 거쳐 공부상서로 퇴관하였다. 일찍이 의종 때는 교로도감(橋路都監)이 되어 도성 안의 무당과 음사(淫祠)가 많아 민심을 현혹시키므로 음사는 모두 불지르고 무당은 교외로 내쫓아 미신을 배척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朝鮮金石總覽
高麗史節要
朝鮮金石總覽
[집필자]
황운룡(黃雲龍)
명 : "유일(有一)"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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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