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사전(崔思全)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D5CC0ACC804B1067X0 |
시호(諡號) | 장경(莊景) |
생년 | 1067(문종 21) |
졸년 | 1139(인종 17) |
시대 | 고려중기 |
본관 | 탐진(耽津) |
활동분야 | 변란 > 공신 |

공신호 | 추충위사공신(推忠衛社功臣) |

[상세내용]
최사전(崔思全)
1067년(문종 21)∼1139년(인종 17). 고려 중기의 공신‧의인. 탐진최씨(耽津崔氏)의 시조.
처음에 내의(內醫)가 되어 점차 승진, 소부소감(小府少監)이 되었는데, 예종의 등창을 오진하여 죽게 됨에, 한안인(韓安仁)‧문공미(文公美)의 처벌요청에 의하여 2년간 귀양을 갔다. 이를 원망, 두 사람을 이자겸(李資謙)에게 모함하여 귀양을 보내게 하였다.
뒤에 이자겸이 난을 일으킴에 척준경(拓俊京)을 설득하여 난의 평정에 공을 세웠다. 상으로 병부상서(兵部尙書)와 추충위사공신(推忠衛社功臣)을 받고, 또 수사공상서좌복야(守司空尙書左僕射)를 더하였다.
참지정사 판상서형부사(參知政事判尙書刑部事)가 되고,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에 승진되었으나 치사하였으며, 개부의동삼사수태위주국(開府儀同三司守太尉柱國)을 받았다.
시호는 장경(莊景), 인종묘정에 배향되었다.
처음에 내의(內醫)가 되어 점차 승진, 소부소감(小府少監)이 되었는데, 예종의 등창을 오진하여 죽게 됨에, 한안인(韓安仁)‧문공미(文公美)의 처벌요청에 의하여 2년간 귀양을 갔다. 이를 원망, 두 사람을 이자겸(李資謙)에게 모함하여 귀양을 보내게 하였다.
뒤에 이자겸이 난을 일으킴에 척준경(拓俊京)을 설득하여 난의 평정에 공을 세웠다. 상으로 병부상서(兵部尙書)와 추충위사공신(推忠衛社功臣)을 받고, 또 수사공상서좌복야(守司空尙書左僕射)를 더하였다.
참지정사 판상서형부사(參知政事判尙書刑部事)가 되고,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에 승진되었으나 치사하였으며, 개부의동삼사수태위주국(開府儀同三司守太尉柱國)을 받았다.
시호는 장경(莊景), 인종묘정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史節要
[집필자]
김두종(金斗鍾)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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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