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덕대왕(元德大王)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4C6D0B355B300U9999X0 |
생년 | ?(미상) |
졸년 | ?(미상) |
시대 | 고려전기 |
본관 | 개성(開城) |
활동분야 | 왕실 > 왕족 |
부 | 강충(康忠) |
조부 | 왕호경(王虎景) |
처 | 덕주(德周) |
[상세내용]
원덕대왕(元德大王)
생졸년 미상. 고려 태조 왕건의 증조부. 본관은 개성(開城).
919년(태조 2) 3대를 추존할 때 시조 원덕대왕이라 하였다.
『고려사』에 인용된 김관의(金寬毅)의 『편년통록(編年通錄)』에 의하면 호경(虎景)의 아들이 강충(康忠)이고 그의 아들로 이제건(伊帝建)과 손호술(損乎述: 寶育)이 있는데, 손호술은 국조 원덕대왕으로 추존되었다고 한다.
출가하여 지리산에 들어가 수도하고 평나산(平那山) 북갑(北岬)에 돌아와 살다가 다시 마하갑(摩訶岬)으로 이사하였다.
일찍이 곡령(鵠嶺)에 올라가 남쪽을 향하여 오줌을 누니 삼한(三韓) 산천이 은해(銀海)로 변하여 다음날 형 이제건에게 말하니 이는 임금이 될 사람을 낳으리라 하고 그 딸 덕주(德周)와 혼인시켰다 한다.
딸 둘을 낳으니 작은딸이 진의(辰義)로 당(唐)나라의 숙종(肅宗)과 동침하여 작제건(作帝建)을 낳으니 이가 왕건의 할아버지이다. 이것은 당나라의 황실과 연계함으로 왕건세계를 미화하기 위함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서 3대를 추존할 때 국조 원덕대왕의 비(妣)로 딸인 진의가 정화왕후(貞和王后)로 추존된 것이 의심스러워 진의는 보육의 형 이제건의 둘째딸로서 작은아버지인 보육과의 근친혼인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919년(태조 2) 3대를 추존할 때 시조 원덕대왕이라 하였다.
『고려사』에 인용된 김관의(金寬毅)의 『편년통록(編年通錄)』에 의하면 호경(虎景)의 아들이 강충(康忠)이고 그의 아들로 이제건(伊帝建)과 손호술(損乎述: 寶育)이 있는데, 손호술은 국조 원덕대왕으로 추존되었다고 한다.
출가하여 지리산에 들어가 수도하고 평나산(平那山) 북갑(北岬)에 돌아와 살다가 다시 마하갑(摩訶岬)으로 이사하였다.
일찍이 곡령(鵠嶺)에 올라가 남쪽을 향하여 오줌을 누니 삼한(三韓) 산천이 은해(銀海)로 변하여 다음날 형 이제건에게 말하니 이는 임금이 될 사람을 낳으리라 하고 그 딸 덕주(德周)와 혼인시켰다 한다.
딸 둘을 낳으니 작은딸이 진의(辰義)로 당(唐)나라의 숙종(肅宗)과 동침하여 작제건(作帝建)을 낳으니 이가 왕건의 할아버지이다. 이것은 당나라의 황실과 연계함으로 왕건세계를 미화하기 위함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서 3대를 추존할 때 국조 원덕대왕의 비(妣)로 딸인 진의가 정화왕후(貞和王后)로 추존된 것이 의심스러워 진의는 보육의 형 이제건의 둘째딸로서 작은아버지인 보육과의 근친혼인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王室의 先代世系說話에 대하여(丁仲煥, 東亞論叢 1, 1963)
高麗太祖世系의 錯譜에 關하여(朴漢卨, 史叢 17‧18合輯, 1973)
高麗史節要
高麗王室의 先代世系說話에 대하여(丁仲煥, 東亞論叢 1, 1963)
高麗太祖世系의 錯譜에 關하여(朴漢卨, 史叢 17‧18合輯, 1973)
[집필자]
문수진(文秀鎭)
대표명 | 원덕대왕(元德大王) |
왕명 | 원덕대왕(元德大王) |
왕명 : "원덕대왕(元德大王)"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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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