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충(金元冲)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C6D0CDA9U9999X0 |
시호(諡號) | 정간(貞簡) |
생년 | ?(미상) |
졸년 | ?(미상) |
시대 | 고려전기 |
본관 | 경주(慶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상세내용]
김원충(金元冲)
생졸년 미상. 고려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정종(靖宗)과 문종의 장인이다.
1036년(정종 2) 상서우승으로 진봉사(進奉使) 및 고주사(告奏使)가 되어 송나라에 사신으로 갔으나 옹진에서 파선되어 되돌아왔고 이듬해 상서좌승으로 거란에 사신으로 가서 연호의 반포를 요청하였다.
1040년 지중추원사로 있을 때 딸이 정종의 비(容節德妃)가 됨으로써 국구(國舅)가 되고, 1047년(문종 1) 내사시랑평장사가 되었다.
1049년 작은딸이 또 문종의 비가 되자, 이듬해 문하시랑평장사 판상서형부사를 거쳐 수사도 문하시중이 되었다. 이신석(李申錫)이 급제하였을 때 최충(崔冲)은 이신석이 씨족을 쓰지 않았다고 반대하였으나, 판어사대사(判御史臺事) 김정준(金廷俊)과 함께 그것에 관계없이 현인을 기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여 문종이 이를 허락하였다.
정종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1036년(정종 2) 상서우승으로 진봉사(進奉使) 및 고주사(告奏使)가 되어 송나라에 사신으로 갔으나 옹진에서 파선되어 되돌아왔고 이듬해 상서좌승으로 거란에 사신으로 가서 연호의 반포를 요청하였다.
1040년 지중추원사로 있을 때 딸이 정종의 비(容節德妃)가 됨으로써 국구(國舅)가 되고, 1047년(문종 1) 내사시랑평장사가 되었다.
1049년 작은딸이 또 문종의 비가 되자, 이듬해 문하시랑평장사 판상서형부사를 거쳐 수사도 문하시중이 되었다. 이신석(李申錫)이 급제하였을 때 최충(崔冲)은 이신석이 씨족을 쓰지 않았다고 반대하였으나, 판어사대사(判御史臺事) 김정준(金廷俊)과 함께 그것에 관계없이 현인을 기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여 문종이 이를 허락하였다.
정종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史節要
[집필자]
박성봉(朴性鳳)
대표명 | 김원충(金元冲) |
성명 | 김원충(金元冲) |
성명 : "김원충(金元冲)"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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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