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항(箒項)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D94D56DFFFFD0602X0 |
생년 | ?(미상) |
졸년 | 602(진평왕 24) |
시대 | 신라 |
활동분야 | 군인 > 군인 |
출신지 | 왕경(王京) |
출신지 | 사량부(沙梁部) |
[상세내용]
추항(箒項)
미상∼602년(진평왕 24). 신라 진평왕 때의 군인. 왕경(王京) 사량부(沙梁部) 출신.
어려서부터 귀산(貴山)과 깊이 사귀었는데, 중국 수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원광법사(圓光法師)를 가실사(加悉寺)로 찾아가 세속오계(世俗五戒)를 받고, 이 계율을 지키기로 다짐하였다.
그뒤 602년(진평왕 24) 8월 백제군이 아막성(阿莫城: 지금의 전라북도 남원 운봉)을 공격할 때 귀산과 함께 소감(少監)으로서 출전,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오다가 격전중에 입은 상처로 인하여 길에서 죽었다.
이에 진평왕이 신하들과 함께 아나(阿那) 들판에서 맞이하여 그의 시체를 보고 통곡하고 예를 갖추어 장사지내 주었다.
또, 대사(大舍) 벼슬에 추증(追贈)하였다.
어려서부터 귀산(貴山)과 깊이 사귀었는데, 중국 수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원광법사(圓光法師)를 가실사(加悉寺)로 찾아가 세속오계(世俗五戒)를 받고, 이 계율을 지키기로 다짐하였다.
그뒤 602년(진평왕 24) 8월 백제군이 아막성(阿莫城: 지금의 전라북도 남원 운봉)을 공격할 때 귀산과 함께 소감(少監)으로서 출전,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오다가 격전중에 입은 상처로 인하여 길에서 죽었다.
이에 진평왕이 신하들과 함께 아나(阿那) 들판에서 맞이하여 그의 시체를 보고 통곡하고 예를 갖추어 장사지내 주었다.
또, 대사(大舍) 벼슬에 추증(追贈)하였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三國遺事
三國遺事
[집필자]
이기동(李基東)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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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