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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인(李居仁){1}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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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신라
활동분야종교 > 불교인
출신지합천

[상세내용]

이거인(李居仁)
생졸년 미상. 신라 문성왕 때의 불교신도. 합천 출신.

가야산 해인사의 사간장경판(寺刊藏經板)을 만드는 데 공헌한 전설적인 인물로 전하여진다. 온순한 성품을 지녔으며, 지금의 면장에 해당하는 이서(里胥)를 맡고 있었으므로 동네사람들은 그를 인서(仁胥)라고 불렀다.

842년(문성왕 4) 가을에 동네를 다니면서 세를 받다가 저녁에 귀가하였는데, 길가에서 눈이 세개 달린 강아지를 발견하고 데려다 집에서 길렀다. 강아지는 마치 사자처럼 생겼고 성품이 어진 사람과 같아서 하루에 한번씩만 먹고 주인을 잘 따랐다.

이거인 내외도 개를 무척 귀여워하였는데, 844년 가을에 앉아서 해를 쳐다보며 병도 없이 죽었다. 그는 시체를 관에 넣어 묻고 제물을 차려서 장사를 지냈다.

846년 10월 이거인이 죽어서 명부(冥府)에 갔는데 세 눈을 가진 왕이 오봉관(五峰冠)을 쓰고 심판을 하고 있다가 그를 보자 반가이 맞았다. 왕은 자신이 명부에서 허물을 지어 3년 동안 강아지로 변해서 귀양살이를 하였는데, 그때 주인의 은혜에 감사한다고 하면서 은혜를 갚을 수 있게 하여달라고 하였다.

이거인은 앞으로 명부에서 물을 말에 대한 대답을 가르쳐줄 것을 요구하자, 왕은 이를 일러주었다. 이거인은 그 가르침대로 염라대왕 앞에서 “법보(法寶)가 소중하다고 하기에 경판을 새겨서 널리 유포하려 하다가 일을 이루지 못하고 명부로 왔다.”고 하였다. 이에 염라대왕은 명부에서 이거인의 이름을 없앤 뒤 돌려보냈다.

돌아오는 길에 세 눈을 가진 왕을 찾으니, 돌아가서 책을 매어 ‘장경판각공덕문(藏經板刻功德文)’이라 쓰고 관청에 가서 도장을 받아두도록 하였다. 그가 승낙하고 물러나면서 기지개를 하고 깨어나니 한바탕의 꿈이었다. 곧 권선문을 만들어놓고 기다렸다.

그런데 847년 봄에 궁중의 공주들이 한꺼번에 병이 나서 고칠 수 없었는데, 하루는 왕에게 불경 화주(化主)를 불러올 것을 요구하였다. 이거인이 왕궁으로 가자 세 눈 왕의 혼을 의탁받은 공주가 왕에게 불경간행에 시주할 것을 부탁하여 왕이 허락하자 곧 병이 나았다.

왕은 사재를 보시하고 나라 안의 여러 양공(良工)들을 모았으며, 거제도에서 재목을 내고 불경을 새기게 한 뒤 가야산 해인사에 모시고 열두번 경찬회(慶讚會)를 베풀었다. 이거인 내외는 그뒤 편안히 오래 살다가 극락왕생하였다고 한다.

생애라기보다는 일종의 전설로서, 그로 말미암아 해인사의 사간장경이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밝힌 영험담이다. 이 설화에 어떤 역사성을 부여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영험담이 널리 알려지고 있다는 것은 불교의 민간신앙형태를 보여주는 것이어서 그 나름대로의 의의가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朝鮮寺刹史料

[집필자]

김위석(金渭錫)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