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金剛){1}
[상세내용]
금강(金剛)
미상∼660년(태종무열왕 7). 신라 태종무열왕 때 상대등(上大等).
655년(태종무열왕 2) 정월에 이찬(伊飡)의 관등으로 상대등이 되었다. 마지막 활동을 한 시기는 태종무열왕의 초기로 상대등의 관직을 차지하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
신라 중대에 들어와 왕권이 강화되면서 상대등은 상징적 관직이 되었는데, 이러한 시기에 상대등의 관직을 차지하였다는 사실이 의미를 더하여 준다.
더욱이 660년에 그가 죽자 그 후임에 김유신(金庾信)이 또한 이찬의 관등으로 상대등이 된 사실이라든지, 653년에 왕자 김인문(金仁問)이 군주(軍主)의 자리에 오른 것과, 655년에 왕자 문왕(文王)이 중시(中侍)의 벼슬에 오른 사실 등은 이 시기의 역사적 중요성을 알 수 있다.
655년(태종무열왕 2) 정월에 이찬(伊飡)의 관등으로 상대등이 되었다. 마지막 활동을 한 시기는 태종무열왕의 초기로 상대등의 관직을 차지하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
신라 중대에 들어와 왕권이 강화되면서 상대등은 상징적 관직이 되었는데, 이러한 시기에 상대등의 관직을 차지하였다는 사실이 의미를 더하여 준다.
더욱이 660년에 그가 죽자 그 후임에 김유신(金庾信)이 또한 이찬의 관등으로 상대등이 된 사실이라든지, 653년에 왕자 김인문(金仁問)이 군주(軍主)의 자리에 오른 것과, 655년에 왕자 문왕(文王)이 중시(中侍)의 벼슬에 오른 사실 등은 이 시기의 역사적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집필자]
황운룡(黃雲龍)
대표명 | 금강(金剛){1} |
성명 | 김강(金剛) |
성명 : "김강(金剛)"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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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