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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협(鮮于浹)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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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중윤(仲潤)
호(號)돈암(遯菴)
시호(諡號)문간(文簡)
생년1588(선조 21)
졸년1653(효종 4)
시대조선중기
본관태원(太原)
활동분야학자 > 유생
선우식(鮮于寔)
경주이씨(慶州李氏)
외조부이억수(李億壽)
출신지평안도 태천(泰川)

[상세내용]

선우협(鮮于浹)
1588년(선조 21)∼1653년(효종 4).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태원(太原). 자는 중윤(仲潤), 호는 돈암(遯菴). 평안도 태천(泰川) 출신.

부친은 숭인전감(崇仁殿監) 선우식(鮮于寔)이며, 모친은 경주이씨(慶州李氏)어모장군(禦侮將軍) 이억수(李億壽)의 딸이다. 김태좌(金台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38세에 도산서원(陶山書院)을 찾아가 이황(李滉)이 남긴 장서 수백권을 열람하고 돌아오는 길에 장현광(張顯光)을 찾아가 학문을 질문하였다.

그뒤 많은 제자들이 그를 따랐으며, 일생동안 후진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1628년(인조 6) 학행으로 사직참봉(社稷參奉)에 임명된 것을 비롯, 장악원주부(掌樂院主簿)성균관사업(成均館司業) 등에 여러 차례 천거되었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치심궁리(治心窮理)와 입현무방(立賢無方)의 도를 내용으로 하는 상소문을 올려 시행하게 하기도 하였다. 심성이기(心性理氣)를 깊이 연구하였으며, 특히 『주역』에 통달하였다.

당대의 석학 김집(金集)과도 학문적인 토론을 교환하였으며, 세상사람들이 관서부자(關西夫子)라 칭하여 존경하였다.

1883년(고종 20)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평양용곡서원(龍谷書院)태천돈암서원(遯菴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저서로는 『돈암전서』 7권 5책이 있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孝宗實錄
遯菴全書
遯實菴記(鮮于悳編)
朝鮮儒敎淵源(張志淵)

[집필자]

이민식(李民植)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