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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위한(趙緯韓)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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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지세(持世)
호(號)현곡(玄谷)
생년1567(명종 22)
졸년1649(인조 27)
시대조선중기
본관한양(漢陽)
활동분야문신 > 문신
조양정(趙揚庭)
증조부조방언(趙邦彦)

[상세내용]

조위한(趙緯韓)
1567년(명종 22)∼1649년(인조 27).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지세(持世), 호는 현곡(玄谷). 참판 조방언(趙邦彦)의 증손으로, 조양정(趙揚庭)의 아들이다. 조유한(趙維韓)의 아우이며 조찬한(趙纘韓)의 형이다.

1592년(선조 25)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김덕령(金德齡)을 따라 종군하였으며, 1601년 사마시를 거쳐 1609년(광해군 1)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 주부(主簿)감찰 등을 지냈다.

1613년 국구(國舅) 김제남(金悌男)의 무옥(誣獄)에 연좌되어 여러 조신들과 함께 구금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재등용되어 사성에 제수되었다가, 상의원정을 거쳐 장령집의에 제수되고 호당(湖堂)에 뽑혔다.

그뒤 양양군수가 되었다가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이 난을 일으키자 토벌에 참여, 경사(京師)를 지켰으며, 정묘‧병자호란 때에도 출전, 난이 끝난 뒤에 군사를 거두고 돌아왔다.

그뒤 벼슬길에서 물러나 있다가 다시 등용되었으며, 여러 차례 연석(筵席)에 나가서는 권신들의 실정을 계옥(啓沃)하였다.

그뒤 동부승지직제학을 지내고, 벼슬이 공조참판에 이르렀으며, 80세에 자헌대부에 오르고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지냈다.

글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해학(諧謔)에도 능하였다.

[참고문헌]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國朝人物志

[집필자]

홍순만(洪淳晩)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