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환기(宋煥箕)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1A1D658AE30B1728X0 |
자(字) | 자동(子東) |
호(號) | 심재(心齋) |
호(號) | 성담(性潭) |
시호(諡號) | 문경(文敬) |
생년 | 1728(영조 4) |
졸년 | 1807(순조 7)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은진(恩津)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송인상(宋寅相) |
조부 | 권돈(權墪) |
처부 | 성도응(成道凝) |
저서 | 『성담집』 |
[관련정보]
[상세내용]
송환기(宋煥箕)
1728년(영조 4)∼1807년(순조 7).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자동(子東), 호는 심재(心齋)‧성담(性潭).
송시열(宋時烈)의 5대손이며, 송인상(宋寅相)의 아들이다. 외조부는 안동권씨 권돈(權墪)이고, 처부는 창녕성씨 성도응(成道凝)이다.
남달리 총명하여 어릴 때부터 『태극도설』‧『역학계몽』‧『가례』 등을 배웠다.
1799년(정조 23) 사도시주부(司䆃寺主簿)가 되고, 사헌부지평‧사헌부장령‧군자감정(軍資監正)을 거쳐 진산군수가 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사직하였다.
1807년(순조 7) 형조참의‧예조참판에 올랐다. 당시 심성(心性)의 변(辨)으로 성리학계에서 논쟁을 벌일 때 한원진(韓元震)의 주장을 지지하였다.
그는 학덕을 겸비하여 조야의 존경을 받았으며, 문하에 많은 선비가 모여들었다.
저서로는 『성담집』이 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송시열(宋時烈)의 5대손이며, 송인상(宋寅相)의 아들이다. 외조부는 안동권씨 권돈(權墪)이고, 처부는 창녕성씨 성도응(成道凝)이다.
남달리 총명하여 어릴 때부터 『태극도설』‧『역학계몽』‧『가례』 등을 배웠다.
1799년(정조 23) 사도시주부(司䆃寺主簿)가 되고, 사헌부지평‧사헌부장령‧군자감정(軍資監正)을 거쳐 진산군수가 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사직하였다.
1807년(순조 7) 형조참의‧예조참판에 올랐다. 당시 심성(心性)의 변(辨)으로 성리학계에서 논쟁을 벌일 때 한원진(韓元震)의 주장을 지지하였다.
그는 학덕을 겸비하여 조야의 존경을 받았으며, 문하에 많은 선비가 모여들었다.
저서로는 『성담집』이 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참고문헌]
純祖實錄
[집필자]
권오호(權五虎)
성명 : "송환기(宋煥箕)"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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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