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도(朴致道){1}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C15CE58B3C4B1642X0 |
자(字) | 학계(學季) |
호(號) | 검암(黔巖) |
생년 | 1642(인조 20) |
졸년 | 1697(숙종 23)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순천(順天)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박충정(朴忠挺) |
출신지 | 광주(光州) |
[관련정보]
[상세내용]
박치도(朴致道)
1642년(인조 20)∼1697년(숙종 2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학계(學季),(주1)
호는 검암(黔巖). 광주(光州) 출신. 진사 박충정(朴忠挺)의 아들이다.
1668년(현종 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680년(숙종 6) 지평에 이어 정언이 되어 절도정배(絶島定配)와 추록훈(追錄勳)을 신중히 처리하도록 상소하였다.
이듬해 도당록(都堂錄)에 오르고, 1682년 북평사(北評事)‧부수찬‧지평, 1683년 장령‧부교리‧헌납‧집의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1684년 이후 오랫동안 승지를 지냈으며, 한때 목사를 지낸 바 있다. 문장에 능하고 학행이 뛰어났으며, 민정중(閔鼎重)‧김수항(金壽恒) 등과 깊이 사귀었다.
생년 자 본관 |
『國朝榜目』(규장각[奎貴11655])의 박치도 문과 급제기록 참고. |
1668년(현종 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680년(숙종 6) 지평에 이어 정언이 되어 절도정배(絶島定配)와 추록훈(追錄勳)을 신중히 처리하도록 상소하였다.
이듬해 도당록(都堂錄)에 오르고, 1682년 북평사(北評事)‧부수찬‧지평, 1683년 장령‧부교리‧헌납‧집의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1684년 이후 오랫동안 승지를 지냈으며, 한때 목사를 지낸 바 있다. 문장에 능하고 학행이 뛰어났으며, 민정중(閔鼎重)‧김수항(金壽恒) 등과 깊이 사귀었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國朝榜目
國朝榜目
[집필자]
김능하(金綾夏)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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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