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동(李成童)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C131B3D9U9999X0 |
자(字) | 차옹(次翁) |
호(號) | 졸옹(拙翁) |
생년 | ?(미상)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인천(仁川)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희안(李希顔) |
조부 | 이중손(李仲孫) |

[상세내용]
이성동(李成童)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차옹(次翁), 호는 졸옹(拙翁). 참판 이중손(李仲孫)의 손자이며, 판관 이희안(李希顔)의 아들이다.
1495년(연산군 1)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지평을 지냈다.
1507년(중종 2) 사간을, 1517년 부제학‧직제학‧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충청도관찰사로 나갔으며 1519년 예조참의를 거쳐 대사간으로서 사헌부의 관원인 이청(李淸)‧송호지(宋好智)‧김익(金釴)‧권전(權磌) 등과 함께 정광필(鄭光弼)‧신용개(申用漑)‧안당(安瑭) 등 삼공(三公)의 인물됨에 대하여 논하여 임금에게 알렸는데 이때의 인물평이 이후 조신들 사이에서 자주 인용되었다.
또, 조광조(趙光祖) 등과 함께 합사(閤司)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가운데 외람되게 등록된 사람들을 삭제하도록 하였다. 이 해에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전대간 유인숙(柳仁淑)‧김익‧권전 등과 함께 예궐하여 조광조 등과 함께 처벌받기를 청하였다.
이듬해 안처겸(安處謙)의 옥사에 연루되어 관직을 삭탈당하였으나, 다시 등용되어 1521년 강원도관찰사‧예조참의를 지냈으나 조광조 일파로서의 죄가 추론되어 삭직당하였다.
1495년(연산군 1)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지평을 지냈다.
1507년(중종 2) 사간을, 1517년 부제학‧직제학‧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충청도관찰사로 나갔으며 1519년 예조참의를 거쳐 대사간으로서 사헌부의 관원인 이청(李淸)‧송호지(宋好智)‧김익(金釴)‧권전(權磌) 등과 함께 정광필(鄭光弼)‧신용개(申用漑)‧안당(安瑭) 등 삼공(三公)의 인물됨에 대하여 논하여 임금에게 알렸는데 이때의 인물평이 이후 조신들 사이에서 자주 인용되었다.
또, 조광조(趙光祖) 등과 함께 합사(閤司)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가운데 외람되게 등록된 사람들을 삭제하도록 하였다. 이 해에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전대간 유인숙(柳仁淑)‧김익‧권전 등과 함께 예궐하여 조광조 등과 함께 처벌받기를 청하였다.
이듬해 안처겸(安處謙)의 옥사에 연루되어 관직을 삭탈당하였으나, 다시 등용되어 1521년 강원도관찰사‧예조참의를 지냈으나 조광조 일파로서의 죄가 추론되어 삭직당하였다.
[참고문헌]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己卯錄補遺
中宗實錄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己卯錄補遺
[이미지]
[집필자]
김해영(金海榮)
성명 : "이성동(李成童)"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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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