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적(任適)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784C801FFFFB1685X0 |
자(字) | 도언(道彦) |
호(號) | 노은(老隱) |
생년 | 1685(숙종 11) |
졸년 | 1728(영조 4)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풍천(豊川)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증조부 | 임의백(任義伯) |
저서 | 『노은집』 |
[상세내용]
임적(任適)
1685년(숙종 11)∼1728년(영조 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도언(道彦), 호는 노은(老隱). 참판 임의백(任義伯)의 증손으로, 권상하(權尙夏)의 문인이다.
1710년(숙종 36) 사마시에 뽑혀 진사가 되었고, 장녕전참봉(長寧殿參奉)‧장원서별제(掌苑署別提)‧양성현감 등을 거쳐, 1725년(영조 1) 함흥판관이 되어 2년간 재직하다가 실정을 탄핵받아 관직을 떠났다.
그뒤 벼슬에 뜻을 버리고 오직 유가경전(儒家經傳)은 물론, 음양상률(陰陽象律)‧의방복서(醫方卜筮)‧전곡갑병(錢穀甲兵)‧산천도리(山川道里) 등 다방면으로 서적을 섭렵, 이치를 궁구하여 이에 박통하였으며, 함흥판관으로 있을 때는 특히 치리(治理)와 교도(敎導)에 힘써 송사가 없었다 한다. 조행(操行)이 고결하고 재리(財利)를 멀리하여, 그가 죽었을 때는 염장(殮葬)의 비용이 없어 남에게 빌려 쓸 정도였다.
시와 문장이 다 볼만하였으며, 저서로 『노은집』이 있다.
1710년(숙종 36) 사마시에 뽑혀 진사가 되었고, 장녕전참봉(長寧殿參奉)‧장원서별제(掌苑署別提)‧양성현감 등을 거쳐, 1725년(영조 1) 함흥판관이 되어 2년간 재직하다가 실정을 탄핵받아 관직을 떠났다.
그뒤 벼슬에 뜻을 버리고 오직 유가경전(儒家經傳)은 물론, 음양상률(陰陽象律)‧의방복서(醫方卜筮)‧전곡갑병(錢穀甲兵)‧산천도리(山川道里) 등 다방면으로 서적을 섭렵, 이치를 궁구하여 이에 박통하였으며, 함흥판관으로 있을 때는 특히 치리(治理)와 교도(敎導)에 힘써 송사가 없었다 한다. 조행(操行)이 고결하고 재리(財利)를 멀리하여, 그가 죽었을 때는 염장(殮葬)의 비용이 없어 남에게 빌려 쓸 정도였다.
시와 문장이 다 볼만하였으며, 저서로 『노은집』이 있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집필자]
조원래(趙湲來)
대표명 | 임적(任適) |
명 | 적(適) |
명 : "적(適)"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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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