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홍량(任弘亮)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84D64DB7C9B1634X0 |
자(字) | 사인(士寅) |
호(號) | 창추(敞帚) |
생년 | 1634(인조 12) |
졸년 | 1707(숙종 33)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풍천(豊川)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임준(任晙) |
모 | 능주구씨(陵州具氏) |
외조부 | 구강(具剛) |
저서 | 『창추유고 (敞帚遺稿)』 |

[관련정보]
[상세내용]
임홍량(任弘亮)
1634년(인조 12)∼1707년(숙종 33).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사인(士寅), 호는 창추(敞帚).
부친은 부호군(副護軍) 임준(任晙), 모친은 능주구씨(陵州具氏)로 구강(具剛)의 딸이다. 이황(李滉)을 사숙(私淑:직접 가르침을 받지 않았으나 스스로 그의 학덕을 본받아 학문을 닦음)하였다.
1657년(효종 8)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662년(현종 3)에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합격하여 기천(基川)‧명주(溟州)의 군수를 거쳐 목사(牧使)에 이르렀다. 어려서부터 효심이 강하여 부모의 뜻에 따라 학업에 열중하였으며, 관직에 있을 때는 항상 백성의 질고(疾苦)를 생각하여 부역(賦役)을 경감해 주고 빈한(貧寒)을 구휼하였다.
그는 당시 성리학(性理學)에 융성하여 그에 대한 시비가 자주 일어남을 보고 성리학의 연구를 포기하고 오직 시문(詩文)의 연구에 힘을 써서 아순(雅馴:문장의 품이 높고 점잖은 모양)하다는 평을 받았다. 저서로는 『창추유고 (敞帚遺稿)』 4권이 있다.
부친은 부호군(副護軍) 임준(任晙), 모친은 능주구씨(陵州具氏)로 구강(具剛)의 딸이다. 이황(李滉)을 사숙(私淑:직접 가르침을 받지 않았으나 스스로 그의 학덕을 본받아 학문을 닦음)하였다.
1657년(효종 8)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662년(현종 3)에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합격하여 기천(基川)‧명주(溟州)의 군수를 거쳐 목사(牧使)에 이르렀다. 어려서부터 효심이 강하여 부모의 뜻에 따라 학업에 열중하였으며, 관직에 있을 때는 항상 백성의 질고(疾苦)를 생각하여 부역(賦役)을 경감해 주고 빈한(貧寒)을 구휼하였다.
그는 당시 성리학(性理學)에 융성하여 그에 대한 시비가 자주 일어남을 보고 성리학의 연구를 포기하고 오직 시문(詩文)의 연구에 힘을 써서 아순(雅馴:문장의 품이 높고 점잖은 모양)하다는 평을 받았다. 저서로는 『창추유고 (敞帚遺稿)』 4권이 있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國朝文科榜目
敞帚遺稿(任弘亮)
國朝人物考
國朝文科榜目
敞帚遺稿(任弘亮)
國朝人物考
[집필자]
이원배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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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1 | 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