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성(尹衡聖)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24D615C131B1608X0 |
자(字) | 경임(景任) |
호(號) | 기기재(棄棄齋) |
생년 | 1608(선조 41) |
졸년 | 1676(숙종 2)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남원(南原)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윤호(尹皓) |
[상세내용]
윤형성(尹衡聖)
1608년(선조 41)∼1676년(숙종 2).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경임(景任), 호는 기기재(棄棄齋). 관찰사 윤세림(尹世臨)의 후손이며, 승지 윤호(尹皓)의 아들이다.
1662년(현종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664년에 정언을 거쳐 전적‧공조좌랑‧병조정랑‧장령‧헌납이 되었다. 당시 서필원(徐必源)의 파직상소 사건 때에는 이경휘(李慶徽)‧유상운(柳尙運)과 함께 삼간(三奸)의 한 사람으로 불린 일도 있었다.
그뒤 1672년 세자시강원문학이 되고, 뒤에 필선‧보덕‧사예‧예빈시정‧함평현감‧삼척부사를 역임하고 옥천군수를 거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1674년 현종이 죽자 갑인예송이 일어났는데 사간으로 송시열(宋時烈)의 편에 들었으나 곧 파직되었다.
1676년 진주목사가 되었다가 병으로 사직하였다.
1662년(현종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664년에 정언을 거쳐 전적‧공조좌랑‧병조정랑‧장령‧헌납이 되었다. 당시 서필원(徐必源)의 파직상소 사건 때에는 이경휘(李慶徽)‧유상운(柳尙運)과 함께 삼간(三奸)의 한 사람으로 불린 일도 있었다.
그뒤 1672년 세자시강원문학이 되고, 뒤에 필선‧보덕‧사예‧예빈시정‧함평현감‧삼척부사를 역임하고 옥천군수를 거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1674년 현종이 죽자 갑인예송이 일어났는데 사간으로 송시열(宋時烈)의 편에 들었으나 곧 파직되었다.
1676년 진주목사가 되었다가 병으로 사직하였다.
[참고문헌]
顯宗實錄
肅宗實錄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文谷集(金壽恒)
肅宗實錄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文谷集(金壽恒)
[집필자]
손승철(孫承喆)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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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