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선(梁克選)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591ADF9C120B1575X0 |
자(字) | 군거(君擧) |
호(號) | 운송(雲松) |
생년 | 1575(선조 8)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남원(南原)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양여지(梁汝止) |
출생지 | 전라북도 전주(全州) |

[관련정보]
[상세내용]
양극선(梁克選)
1575년(선조 8)∼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군거(君擧), 호는 운송(雲松). 본관은 남원(南原)이다. 전라북도 전주(全州)에서 출생하였다.
부친은 찬성(贊成)에 증직된 양여지(梁汝止)이다.
1601년(선조 34)에 생원진사과에 합격하였으며, 1606년(선조 39) 식년문과 병과 11위로 급제하였다.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쳤는데, 통훈대부(通訓大夫) 통례원우통례(通禮院右通禮)로 선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1614년(광해군 6) 장악원첨정(掌樂院僉正), 1617년 좌통례(左通禮), 1618년(광해군 10) 공주목사(公州牧使), 여주목사(驪州牧使)에 제배되었다. 당시 실록에는 양극선에 대해서 “다른 사람의 종이었는데, 면천(免賤)되지 않은 채 속임수를 써서 과거(科擧)에 급제하였다. 역당(逆黨)들에게 부회하여 여러 차례 흉악한 상소를 올려 청현직을 두루 역임하고 드디어 이 직책에 오른 것이다.”라고 기록하였다.
아마도 광해군 때 벼슬살이를 한 그의 정치경력 때문인 듯하다. 그때문인지 그의 관력은 이후 나타나지 않다가, 1640년(인조 18)에 고부군수(古阜郡守)와 청송부사(靑松府使)에, 1645년(인조 23) 흥해군수(興海郡守)에 제수(除授)되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오랫동안 관직에서 떠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들은 참봉(參奉) 양우치(梁禹治)가 있다.
부친은 찬성(贊成)에 증직된 양여지(梁汝止)이다.
1601년(선조 34)에 생원진사과에 합격하였으며, 1606년(선조 39) 식년문과 병과 11위로 급제하였다.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쳤는데, 통훈대부(通訓大夫) 통례원우통례(通禮院右通禮)로 선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1614년(광해군 6) 장악원첨정(掌樂院僉正), 1617년 좌통례(左通禮), 1618년(광해군 10) 공주목사(公州牧使), 여주목사(驪州牧使)에 제배되었다. 당시 실록에는 양극선에 대해서 “다른 사람의 종이었는데, 면천(免賤)되지 않은 채 속임수를 써서 과거(科擧)에 급제하였다. 역당(逆黨)들에게 부회하여 여러 차례 흉악한 상소를 올려 청현직을 두루 역임하고 드디어 이 직책에 오른 것이다.”라고 기록하였다.
아마도 광해군 때 벼슬살이를 한 그의 정치경력 때문인 듯하다. 그때문인지 그의 관력은 이후 나타나지 않다가, 1640년(인조 18)에 고부군수(古阜郡守)와 청송부사(靑松府使)에, 1645년(인조 23) 흥해군수(興海郡守)에 제수(除授)되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오랫동안 관직에서 떠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들은 참봉(參奉) 양우치(梁禹治)가 있다.
[참고문헌]
국조방목
전주생진청금록
완산지
호남지
완주군사
전라문화의 맥과 전북인물
승정원일기
승정원일기(http://sjw.history.go.kr/main/main.jsp)
전주생진청금록
완산지
호남지
완주군사
전라문화의 맥과 전북인물
승정원일기
승정원일기(http://sjw.history.go.kr/main/main.jsp)
[집필자]
김성수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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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30 | 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