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기(閔機)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BBFCAE30FFFFB1568X0 |
자(字) | 자선(子善) |
호(號) | 서한당(棲閑堂) |
생년 | 1568(선조 1) |
졸년 | 1641(인조 13)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여흥(驪興)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민여준(閔汝俊) |
조부 | 민사용(閔思容) |

[상세내용]
민기(閔機)
1568년(선조 1)∼1641년(인조 1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자선(子善), 호는 서한당(棲閑堂).
군수 민사용(閔思容)의 손자로, 정랑 민여준(閔汝俊)의 아들이다.
어릴 때부터 효우(孝友)가 극진하였으며, 학문에 힘써 1597년(선조 30)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에 들어간 뒤 전적을 역임하고, 제주목사로 부임하였다.
특히, 제주목사로 부임한 뒤 7개월 동안에 탐관오리를 몰아내고 공역(工役)을 파하였으며, 수입을 박하게 하여 지출을 절약하게 함으로써 제주도민을 숙연하게 하였다. 뒤에 경주부윤을 지냈으며 청백리로서 선정을 베풀어 명성이 높았다.
군수 민사용(閔思容)의 손자로, 정랑 민여준(閔汝俊)의 아들이다.
어릴 때부터 효우(孝友)가 극진하였으며, 학문에 힘써 1597년(선조 30)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에 들어간 뒤 전적을 역임하고, 제주목사로 부임하였다.
특히, 제주목사로 부임한 뒤 7개월 동안에 탐관오리를 몰아내고 공역(工役)을 파하였으며, 수입을 박하게 하여 지출을 절약하게 함으로써 제주도민을 숙연하게 하였다. 뒤에 경주부윤을 지냈으며 청백리로서 선정을 베풀어 명성이 높았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仁祖實錄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仁祖實錄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집필자]
조계찬(趙啓纘)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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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