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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양(孫起陽)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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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경징(景徵)
호(號)오한(聱漢)
호(號)송간(松磵)
생년1559(명종 14)
졸년1617(광해군 9)
시대조선중기
본관밀양(密陽)
활동분야문신 > 문신
손겸제(孫兼濟)
저서『배민록(排悶錄)』
저서『철조록(輟釣錄)』

[상세내용]

손기양(孫起陽)
1559년(명종 14)∼1617년(광해군 9).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경징(景徵), 호는 오한(聱漢)송간(松磵).

부친은 생원 손겸제(孫兼濟)이다. 약관으로 백가(百家)의 책을 통해 학식이 매우 깊었고, 1585년(선조 18)에 사마시에 합격한 뒤 1588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전적을 거쳐, 경주제독‧울주판관을 지냈다.

1602년 체찰사 이덕형(李德馨)의 천거로 영천군수가 되었고, 창원부사를 지냈다.

1612년(광해군 4) 광해군의 정치가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그뒤 다시 사헌부사간원의 벼슬을 거쳐, 상주목사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고 여생을 학문에 전념하였다.

이황(李滉)의 학통을 이은 정구(鄭逑)와 도의(道義)의 계(契)로 깊은 관계를 맺었던 성리학자이며, 정경세(鄭經世)조호익(曺好益)이윤(李潤)이전(李㙉) 이준(李埈) 등의 영남명유들과 교유가 있었다.

만년에는 역학(易學)에 전심하여 침식을 잊을 정도였으며, 평일에 독서할 때는 『논어』만 읽는 성벽이 있었다.

저서로는 『배민록(排悶錄)』『철조록(輟釣錄)』 등이 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國朝榜目
星湖文集

[집필자]

공원영(孔黿泳)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