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경우(權慶祐)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D8CACBDC6B0B1547X0 |
자(字) | 신지(申之) |
생년 | 1547(명종 2) |
졸년 | 1616(광해군 8)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안동(安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상세내용]
권경우(權慶祐)
1547년(명종 2)∼1616년(광해군 8).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신지(申之).
1585년(선조 18)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언‧헌납‧장령을 역임하였고, 임진왜란 때 남원에서 적세(敵勢)를 잘못 상계(上啓)하여 물러나서 의론(議論)을 기다렸다.
장령으로 복직된 후에는 영의정 윤두수(尹斗壽)가 성격이 흉활(兇猾)하여 화심(禍心)을 품고, 이권(利權)을 좋아하여 사림에 죄를 얻고 청의(淸議)에 버림받은 지 오래되었으며, 유성룡(柳成龍)이 화의를 주장하여 나라를 그릇되게 한 죄를 범하였다고 탄핵하였다.
그리고 매관납속(賣官納粟)의 병폐를 시정하도록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장령으로서 시강원(侍講院)에 입직하였으나 병이 심하여 오래 있지 못하였다.
1616년에 통정대부(通政大夫)로서 동지사(冬至使)가 되어 배를 타고 명나라로 가던 도중에 노환으로 죽었다.
1585년(선조 18)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언‧헌납‧장령을 역임하였고, 임진왜란 때 남원에서 적세(敵勢)를 잘못 상계(上啓)하여 물러나서 의론(議論)을 기다렸다.
장령으로 복직된 후에는 영의정 윤두수(尹斗壽)가 성격이 흉활(兇猾)하여 화심(禍心)을 품고, 이권(利權)을 좋아하여 사림에 죄를 얻고 청의(淸議)에 버림받은 지 오래되었으며, 유성룡(柳成龍)이 화의를 주장하여 나라를 그릇되게 한 죄를 범하였다고 탄핵하였다.
그리고 매관납속(賣官納粟)의 병폐를 시정하도록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장령으로서 시강원(侍講院)에 입직하였으나 병이 심하여 오래 있지 못하였다.
1616년에 통정대부(通政大夫)로서 동지사(冬至使)가 되어 배를 타고 명나라로 가던 도중에 노환으로 죽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國朝榜目
光海君日記
國朝榜目
[집필자]
주웅영(朱雄英)
명 : "경우(慶佑)"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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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