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귀수(李龜壽)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ADC0C218B1524X0 |
자(字) | 서로(瑞老) |
생년 | 1524(중종 19)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유언(李幼彦) |
조부 | 이징원(李澄源) |
증조부 | 이위(李緯) |
외조부 | 홍이평(洪以平)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귀수(李龜壽)
1524년(중종 19)∼미상.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서로(瑞老). 평성군(枰城君) 이위(李緯)의 증손으로, 조부는 의신군(義新君) 이징원(李澄源)이고, 부친은 이유언(李幼彦)이며, 모친은 홍이평(洪以平)의 딸이다.
생원시를 거쳐 1552년(명종 7) 식년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고, 이듬해 예문관대교에 제수(除授)되었다. 1554년(명종 9) 주세붕(周世鵬)이 자식없이 가난하게 죽자, 상가가 영남지역까지 먼 길을 장사지내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건의하여 호송토록 일을 추진하였고, 이듬해에는 병을 핑계로 사직, 낙향한 이황(李滉)의 재등용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 뒤 1555년(명종 10)부터 저작‧박사‧부수찬‧병조좌랑을 역임하는 동안 김홍도(金弘度)‧김계휘(金繼輝) 등과 함께 소윤의 윤원형(尹元衡) 심복 윤춘년(尹春年)을 섬겨 붕당을 이루며 권세를 잡았다.
그러나 1557년(명종 12) 윤원형이 자기를 배척함을 분하게 여겨 허물을 모아 죄로 얽으려다, 파직 및 귀양가게 되었다. 문정왕후(文定王后: 중종의 계비)가 죽고 윤원형이 실각되자 재등용되었다.
생원시를 거쳐 1552년(명종 7) 식년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고, 이듬해 예문관대교에 제수(除授)되었다. 1554년(명종 9) 주세붕(周世鵬)이 자식없이 가난하게 죽자, 상가가 영남지역까지 먼 길을 장사지내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건의하여 호송토록 일을 추진하였고, 이듬해에는 병을 핑계로 사직, 낙향한 이황(李滉)의 재등용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 뒤 1555년(명종 10)부터 저작‧박사‧부수찬‧병조좌랑을 역임하는 동안 김홍도(金弘度)‧김계휘(金繼輝) 등과 함께 소윤의 윤원형(尹元衡) 심복 윤춘년(尹春年)을 섬겨 붕당을 이루며 권세를 잡았다.
그러나 1557년(명종 12) 윤원형이 자기를 배척함을 분하게 여겨 허물을 모아 죄로 얽으려다, 파직 및 귀양가게 되었다. 문정왕후(文定王后: 중종의 계비)가 죽고 윤원형이 실각되자 재등용되었다.
[참고문헌]
明宗實錄
宣祖實錄
國朝榜目
宣祖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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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30 | 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