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당(鄭子堂)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15C790B2F9U9999X0 |
자(字) | 승고(升高) |
호(號) | 청송(靑松) |
생년 | ?(미상)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동래(東萊) |
활동분야 | 관료 |

부 | 정기(鄭期) |
조부 | 정길흥(鄭吉興) |
증조부 | 정규(鄭䂓) |
외조부 | 정초(鄭招) |
저서 | 『청송시집(靑松詩集)』 |

[관련정보]
[상세내용]
정자당(鄭子堂)
생졸년 미상. 자는 승고(升高), 호는 청송(靑松). 본관은 동래(東萊).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시(詩)에 뛰어나고 해학(諧謔)을 즐겼다.
증조부는 정규(鄭䂓)이고, 조부는 정길흥(鄭吉興)이며, 부는 종사랑(從仕郞)을 지낸 정기(鄭期)이다.
외조부는 정초(鄭招)이다.
1469년(예종 1) 기축(己丑) 증광시(增廣試)에 합격하였고, 1488년(성종 19) 무신(戊申) 별시(別試)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교리(承文院校理)가 되었다.
1490년(성종 21)에는 정자(正字)로서 후원에서 활을 쏘아 여러 문신과 함께 활[弓]과 먹[墨] 그리고 벼루[硯] 등을 상으로 받았으며, 이듬해 가주서(假注書)를 지냈다. 1492년(성종 23)에는 『북정일기(北征日記)』를 초창(草創)하여 잘못 내보인 것으로 탄핵을 받았으나, 무재(武才)가 있다는 추천을 받아 겸선전관(兼宣傳官)이 되었다. 또 같은 해 교서관저작(校書館著作)으로 시사(試射)에서 수석을 차지하여 아마(兒馬) 1필(匹)을 받았다.
이후 연산군 때는 광인(狂人)으로 행세하며 사화(士禍)를 면했다고 전한다.
저서로 『청송시집(靑松詩集)』이 있다.
증조부는 정규(鄭䂓)이고, 조부는 정길흥(鄭吉興)이며, 부는 종사랑(從仕郞)을 지낸 정기(鄭期)이다.
외조부는 정초(鄭招)이다.
1469년(예종 1) 기축(己丑) 증광시(增廣試)에 합격하였고, 1488년(성종 19) 무신(戊申) 별시(別試)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교리(承文院校理)가 되었다.
1490년(성종 21)에는 정자(正字)로서 후원에서 활을 쏘아 여러 문신과 함께 활[弓]과 먹[墨] 그리고 벼루[硯] 등을 상으로 받았으며, 이듬해 가주서(假注書)를 지냈다. 1492년(성종 23)에는 『북정일기(北征日記)』를 초창(草創)하여 잘못 내보인 것으로 탄핵을 받았으나, 무재(武才)가 있다는 추천을 받아 겸선전관(兼宣傳官)이 되었다. 또 같은 해 교서관저작(校書館著作)으로 시사(試射)에서 수석을 차지하여 아마(兒馬) 1필(匹)을 받았다.
이후 연산군 때는 광인(狂人)으로 행세하며 사화(士禍)를 면했다고 전한다.
저서로 『청송시집(靑松詩集)』이 있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韓國精神文化硏究院)
國朝文科榜目
朝鮮王朝實錄
國朝文科榜目
朝鮮王朝實錄
[집필자]
이채경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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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1 | 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