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훈(林薰)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784D6C8FFFFB1500X0 |
자(字) | 중성(仲成) |
호(號) | 자이당(自怡堂) |
호(號) | 고사옹(枯查翁) |
호(號) | 갈천(葛川) |
시호(諡號) | 효간(孝簡) |
생년 | 1500(연산군 6) |
졸년 | 1584(선조 17)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은진(恩津)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임득번(林得蕃) |
모 | 진주강씨(晉州姜氏) |
외조부 | 강득구(姜得求) |
저서 | 『갈천집』 |
[상세내용]
임훈(林薰)
1500년(연산군 6)∼1584년(선조 17).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중성(仲成), 호는 자이당(自怡堂), 또는 고사옹(枯查翁)‧갈천(葛川).
부친은 진사 임득번(林得蕃)이며, 모친은 진주강씨(晉州姜氏)로 강득구(姜得求)의 딸이다.
1540년(중종 35)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독서(讀書)하였고, 1553년(명종 8) 관천(館薦)에 의하여 사직서참봉이 되었다가 이듬해에 집경전참봉으로 옮겼다.
그뒤 제용감참봉으로 옮겼으나 부임하지 않았는데, 1555년 전생서참봉이 되었다가 얼마 후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와서 80세가 넘은 노부를 봉양하여 1566년 관찰사의 추천으로 효행의 정려를 받았다.
1566년 언양현감에 발탁되었고, 1569년(선조 2) 군자감주부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곧 비안현감을 거쳐 1573년 지례현감이 제수되었는데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자, 곧 종묘서영(宗廟署令)에 제수되었지만 역시 부임하지 않았다.
얼마 뒤 장악원정을 거쳐 광주목사(光州牧使)를 지냈고, 1582년 장례원판결사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안의의 용문서원(龍門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갈천집』이 있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효간(孝簡)이다.
부친은 진사 임득번(林得蕃)이며, 모친은 진주강씨(晉州姜氏)로 강득구(姜得求)의 딸이다.
1540년(중종 35)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독서(讀書)하였고, 1553년(명종 8) 관천(館薦)에 의하여 사직서참봉이 되었다가 이듬해에 집경전참봉으로 옮겼다.
그뒤 제용감참봉으로 옮겼으나 부임하지 않았는데, 1555년 전생서참봉이 되었다가 얼마 후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와서 80세가 넘은 노부를 봉양하여 1566년 관찰사의 추천으로 효행의 정려를 받았다.
1566년 언양현감에 발탁되었고, 1569년(선조 2) 군자감주부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곧 비안현감을 거쳐 1573년 지례현감이 제수되었는데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자, 곧 종묘서영(宗廟署令)에 제수되었지만 역시 부임하지 않았다.
얼마 뒤 장악원정을 거쳐 광주목사(光州牧使)를 지냈고, 1582년 장례원판결사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안의의 용문서원(龍門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갈천집』이 있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효간(孝簡)이다.
[참고문헌]
[집필자]
권오호(權五虎)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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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