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성(金瑞星)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AE40C11CC131B1497X0 |
| 자(字) | 응경(應卿) |
| 생년 | 1497(연산군 3) |
| 졸년 | 1548(명종 3) |
| 시대 | 조선전기 |
| 본관 | 부령(扶寧) |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 부 | 김석홍(金錫弘) |
| 조부 | 김직손(金直孫) |

[상세내용]
김서성(金瑞星)
1497년(연산군 3)∼1548년(명종 3).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부령(扶寧). 자는 응경(應卿).
조부는 병조정랑 김직손(金直孫)이고 부친은 수안군수(遂安郡守) 김석홍(金錫弘)이다.
1525년(중종 20)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승문원에 들어가 저작‧박사를 거쳐 형조‧공조의 좌랑이 되었다. 이어 호조‧예조‧형조의 정랑을 거쳐 1538년 지평이 되었다.
이듬해 장령이 되었고 집의‧문학‧필선 등을 거쳐 1544년 중종비가 죽자 사재감정(司宰監正)이 되어 일을 처리하였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부지런하였으며, 기량이 원대하여 명리를 탐내지 않아 청렴결백한 선비로 널리 알려졌다.
조부는 병조정랑 김직손(金直孫)이고 부친은 수안군수(遂安郡守) 김석홍(金錫弘)이다.
1525년(중종 20)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승문원에 들어가 저작‧박사를 거쳐 형조‧공조의 좌랑이 되었다. 이어 호조‧예조‧형조의 정랑을 거쳐 1538년 지평이 되었다.
이듬해 장령이 되었고 집의‧문학‧필선 등을 거쳐 1544년 중종비가 죽자 사재감정(司宰監正)이 되어 일을 처리하였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부지런하였으며, 기량이 원대하여 명리를 탐내지 않아 청렴결백한 선비로 널리 알려졌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집필자]
조계찬(趙啓纘)
| 대표명 | 김서성(金瑞星) |
| 자 | 응경(應卿) |
자 : "응경(應卿)"에 대한 용례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