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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은 눈 속에 찬데
만리변성에 일장검 집고 서서
긴 파람 큰 한 소리에 거칠 것이 없어라(가곡원류에서)
위 시조를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아마 읽는 사람은 누구나 웅혼한 무인의 기상을 떠올릴 것이다. 조선 초 세종 때 북방 개척의 영웅 김종서가 두만강 가에 서서 삭막한 북쪽 여진 땅을 바라보며 국토를 지키는 장수의 포부를 읊은 시조로 잘 알려져 있다. 북방의 여진족을 몰아내고 두만강까지 국경을 넓힌 백두산 호랑이 김종서! 그는 문무를 겸비한 조선 최고의 장수였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것과 달리 김종서는 문과를 급제하고 벼슬길에 오른 문관(文官)이었다. 군인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김종서(金宗瑞, 1383-1453)는 호가 절재(節齋)이며 본관은 순천이다.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 과거합격자 정보를 검색해 보면, 1405년(태종 5년) 식년 문과에 동진사 13위로 급제하였다고 나온다. 이후 1433년까지 30여 년을 세종의 신임을 받으며 주로 문관 생활을 했다. 그러나 1433년 12월 함경도 관찰사가 되면서 무인으로서의 고된 행로가 시작되었다. 이후 7, 8년간 두만강 변에서 육진(六鎭)을 개척하여 두만강을 국경선으로 확정하는 데 큰 공로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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