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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 노비에서 최고 지위의 무신이 된 정충신
조회수 : 6357    등록일 : 2007-03-30   

금남군 충무공 정충신(錦南君 忠武公 鄭忠信) 장군은 전라도 나주출신으로 알려진다.  그의 출생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것이 없는데, 아전과 계집종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 법규상 어머니가 종이면 아들도 종의 신분을 세습받았다.

 

정충신은 임진왜란 당시 권율장군을 따라 종군하다가, 16세의 나이에 왜군의 포위를 뚫고 의주까지 가서 권율장군의 장계를 선조임금에게 올렸다. 이러한 의기를 기려 백사 이항복이 그에게 충신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고 선조임금은 노비에서 면천을 시켜주었다고 한다.

 

이후 무과에 급제한 뒤 1621년 만포첨사(滿使)로 국경을 수비하고, 1623년 안주목사 겸 바어사가 되었다.  이때 명을 받고 여진족 진에 들어가 여러 추장을 만나기도 하였다. 1623년(인조 1) 안주목사로 방어사를 겸임하고, 다음해 이괄(李适)의 난 때에는 도원수 장만(張晩)의 휘하에서 전부대장(前部大將)으로 이괄의 군사를 황주와 서울 안산(鞍山)에서 무찔러서 진무공신(振武功臣) 1등으로 금남군(錦南君)에 봉하여졌다.


이괄과 친분이 두터웠던 그가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자신의 결백을 나타내기 위하여 성을 버리고 달아나 문회(文晦) 등의 고발로 체포되었으나 은혜를 입고 풀려났다. 1627년 정묘호란 때에는 부원수를 지냈고, 1633년 조정에서 후금(後金:淸)에 대한 세폐의 증가에 반대하여 후금과의 단교를 위하여 사신을 보내게 되자 김시양(金時讓)과 함께 이를 반대하여 당진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장연으로 이배되었고, 곧 풀려나와 이듬해 포도대장·경상도병마절도사를 지냈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에서 본인의 의지와 노력으로, 천시받는 노비의 신분에서 만인의 추앙을 받는 위인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점에서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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