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 1000명 이상 합격자를 선발했던 무과시험이 몇 번 있었습니다. 주로 병란 등 국가적 위기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래에 이를 제시해 봅니다. 출처: 정해은, [조선후기 무과급제자연구], 2002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시험시기 | 선발인원 | 선발이유 | 방목유무 | 1618(광해 10) | 3200 | 명나라의 파병 요청 | | 1620(광해 12) | 약 3000 | 명나라의 파병 요청 | | 1621(광해 13) | 4031 | 명나라의 파병 요청 | | 1637(인조 15) | 5536 | 병란 | 유 | 1651(효종 2) | 1236 | 북벌 준비 | 유 | 1676(숙종 2) | 17652 | 북벌 준비 | | 1784(정조 8) | 2692 | 왕세자 책봉 | 유 | 1889(고종 26) | 2513 | | | 1894(고종 31) | 1147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