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희(朴英姬)
[상세내용]
박영희(朴英姬)
1941년~1973년 3월 28일. 현대 연극인‧영미희곡번역가. 본적과 출신지는 전라북도 군산(群山)이다.
부친은 박봉상(朴鳳翔)이고, 모친은 최옥순(崔玉順)이다.
군산여자중학교를 거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이화여자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하였다. 1963년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에 드라마센터 연극아카데미와 고려대 대학원 영문학전공에 진학하였다. 고려대 대학원 진학은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 교수 나영균의 권유에 의해 여석기의 지도를 받고자함이었다.
사회에 진출하여 콤페션 한국지부와 토지개량연합회 및 농어촌개발공사 등에서 봉직하였따.
1965년 6월 「햇빛 밝은 아침」을 번역하여 극단 실험극장의 ‘토요살롱’ 무대를 통해 데뷔하였다. 같은 해 「피의 결혼」을 번역하여 이화여대 문리대 연극부에서 공연하였다. 그로부터 번역작업은 생을 마친 7년 후까지 열정적으로 계속되었다.
1971년도 한 해 동안 무대에 올린 번역극이 7편으로, 상반기 「꽃피는 체리」를 제외하면, 하반기 가을 시즌에만 무려 6편이나 몰려있다. 작품은 9월 「슬픈 카페의 노래」, 10월 「잉여부부(剩餘夫婦)」와 「헨리 8세와 그의 여인들」, 11월 「여름과 연기」‧「이탈리안 걸」‧「사랑을 내기에 걸고」 등이다.
당시 저명한 연극연출가들 대부분이 그의 번역극의 도움을 받았는데, 허규는 「햇빛 밝은 아침」‧「돈키호테」(1967)를, 김정옥은 「피의 결혼」‧「꿈과 기쁨을 담뿍」(1970)‧「슬픈 카페의 노래」(1971)를, 임영웅은 「덤 웨이터」(1969)‧「꽃피는 체리」(1971)‧「헨리 8세와 그의 여인들」(1971)을, 전세권은 「쥐덫」(1970)‧「여름과 연기」(1971)를, 유덕형은 「생일파티」(1970)를, 오태석은 「잉여부부」(1971)를, 이완호는 「이탈리안 걸」(1971)을, 유치진은 「사랑을 내기에 걸고」(1971) 등을 거론할 수 있다.
1973년 3월 28일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이하였다.
주검은 벽제화장터에서 화장되었고, 유해는 인근 야산 솔밭에 뿌려졌다.
연극인들은 박영희를 기리기 위해 ‘박영희번역극집’ 『슬픈 카페의 노래』를 출판하였다. 또한 유족이 전한 사망보상금으로 ‘영희연극상’이 제정되어 젊은 연극인의 발전을 독려하고 있다.
부친은 박봉상(朴鳳翔)이고, 모친은 최옥순(崔玉順)이다.
군산여자중학교를 거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이화여자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하였다. 1963년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에 드라마센터 연극아카데미와 고려대 대학원 영문학전공에 진학하였다. 고려대 대학원 진학은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 교수 나영균의 권유에 의해 여석기의 지도를 받고자함이었다.
사회에 진출하여 콤페션 한국지부와 토지개량연합회 및 농어촌개발공사 등에서 봉직하였따.
1965년 6월 「햇빛 밝은 아침」을 번역하여 극단 실험극장의 ‘토요살롱’ 무대를 통해 데뷔하였다. 같은 해 「피의 결혼」을 번역하여 이화여대 문리대 연극부에서 공연하였다. 그로부터 번역작업은 생을 마친 7년 후까지 열정적으로 계속되었다.
1971년도 한 해 동안 무대에 올린 번역극이 7편으로, 상반기 「꽃피는 체리」를 제외하면, 하반기 가을 시즌에만 무려 6편이나 몰려있다. 작품은 9월 「슬픈 카페의 노래」, 10월 「잉여부부(剩餘夫婦)」와 「헨리 8세와 그의 여인들」, 11월 「여름과 연기」‧「이탈리안 걸」‧「사랑을 내기에 걸고」 등이다.
당시 저명한 연극연출가들 대부분이 그의 번역극의 도움을 받았는데, 허규는 「햇빛 밝은 아침」‧「돈키호테」(1967)를, 김정옥은 「피의 결혼」‧「꿈과 기쁨을 담뿍」(1970)‧「슬픈 카페의 노래」(1971)를, 임영웅은 「덤 웨이터」(1969)‧「꽃피는 체리」(1971)‧「헨리 8세와 그의 여인들」(1971)을, 전세권은 「쥐덫」(1970)‧「여름과 연기」(1971)를, 유덕형은 「생일파티」(1970)를, 오태석은 「잉여부부」(1971)를, 이완호는 「이탈리안 걸」(1971)을, 유치진은 「사랑을 내기에 걸고」(1971) 등을 거론할 수 있다.
1973년 3월 28일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이하였다.
주검은 벽제화장터에서 화장되었고, 유해는 인근 야산 솔밭에 뿌려졌다.
연극인들은 박영희를 기리기 위해 ‘박영희번역극집’ 『슬픈 카페의 노래』를 출판하였다. 또한 유족이 전한 사망보상금으로 ‘영희연극상’이 제정되어 젊은 연극인의 발전을 독려하고 있다.
[참고문헌]
[집필자]
이재옥(李載玉)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