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택(崔殷澤)
[상세내용]
최은택(崔殷澤)
1941년~2007년 2월 5일. 현대 체육인.
출신지는 황해도 재령(載寧)이다.
송도중학교와 한양공업고등학교 및 한양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91년 동국대에서 「점증및 변칙 운동부하가 심폐 지구력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으로 체육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중학교 때부터 축구를 시작하여 한양대와 육군 및 대한중석팀의 선수로 활동하다가 1967년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이후 1968년 한양대학교의 축구부 감독으로 활동하였으며, 1971년 고교대표상비군이 창설되자 초대 감독으로 부임하였고, 1975년에는 세계대학생축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팀의 우승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1973년부터 1974년까지 축구 국가대표팀의 코치를 역임하였고, FIFA 코칭스쿨과 독일 연수코스에서 공부하여 ‘공부하는 지도자’로 명성을 얻었다. 1979년 1월 유니버시아드대회 축구대표팀 감독에 선임되기도 하였고, 1979년 당시 38세의 나이로 대한축구협회 최연소 이사에 선임되었다. 1979년부터 1980년까지 국가대표팀의 코치를 다시 역임하였고, 1979년 7월 12일부터 14일까지 말레이이사 쿠알라룸푸르에서 개최되는 아시아축구연맹(AFC) 기술위원회에 파견되어 활발히 활동하였다.
한양대학교 체육대학의 교수로 재직하였고, 1982년 국가대표팀의 감독직과 1984년 K리그 포철(현 포항) 감독직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1997년 중국 연변의 조선족들로 구성되었던 연변오동팀의 감독직을 맡아 중국 리그 4위까지 올려놓는 등 큰 활약을 하였으며, 적극적인 공격축구를 구사하여 팬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최연준이다.
출신지는 황해도 재령(載寧)이다.
송도중학교와 한양공업고등학교 및 한양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91년 동국대에서 「점증및 변칙 운동부하가 심폐 지구력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으로 체육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중학교 때부터 축구를 시작하여 한양대와 육군 및 대한중석팀의 선수로 활동하다가 1967년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이후 1968년 한양대학교의 축구부 감독으로 활동하였으며, 1971년 고교대표상비군이 창설되자 초대 감독으로 부임하였고, 1975년에는 세계대학생축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팀의 우승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1973년부터 1974년까지 축구 국가대표팀의 코치를 역임하였고, FIFA 코칭스쿨과 독일 연수코스에서 공부하여 ‘공부하는 지도자’로 명성을 얻었다. 1979년 1월 유니버시아드대회 축구대표팀 감독에 선임되기도 하였고, 1979년 당시 38세의 나이로 대한축구협회 최연소 이사에 선임되었다. 1979년부터 1980년까지 국가대표팀의 코치를 다시 역임하였고, 1979년 7월 12일부터 14일까지 말레이이사 쿠알라룸푸르에서 개최되는 아시아축구연맹(AFC) 기술위원회에 파견되어 활발히 활동하였다.
한양대학교 체육대학의 교수로 재직하였고, 1982년 국가대표팀의 감독직과 1984년 K리그 포철(현 포항) 감독직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1997년 중국 연변의 조선족들로 구성되었던 연변오동팀의 감독직을 맡아 중국 리그 4위까지 올려놓는 등 큰 활약을 하였으며, 적극적인 공격축구를 구사하여 팬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최연준이다.
[참고문헌]
[집필자]
차호연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