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택(鄭年澤)
[상세내용]
정연택(鄭年澤)
1933년~2010년 12월 19일. 현대 기독교인. 출신지는 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이다. 출생지는 전라북도 고창군(高敞郡)이다.
부인은 김성희이다.
초등학교 졸업 후 전라남도 광주(光州)에서 광주농업중학교에 진학하였는데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5학년 때 학도의용병에 지원하였다. 집총법 등 간단한 훈련을 받은 뒤 낙동강(洛東江) 전투에 투입되었고, 평양(平壤) 탈환에 이어 1951년 1.4후퇴까지 학도병으로 임무를 수행하였다.
1953년 7월 27일 휴전 후에 새로 개편된 광주농업고등학교 2학년으로 들어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전남대학교 농과대학 임학과에 입학하여 농업에 관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은 다음 모교 광주농업고등학교 임학과에 부임하여 학생들에게 농업계론 등을 가르쳤다.
교직 생활을 하면서 기독교인으로서 봉사활동에 관심을 기울이던 중 기독교계 연합 사업에 더 큰 뜻을 펼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하였다.
서울 성동구(城東區) 자양교회에서 활동하다가 1991년부터는 미국 워싱턴에서 세계 각지에 흩어진 평신도들을 모아 코리아 기독교 평신도 세계협의회를 개최하고 회장직을 맡아 활동하였다.
1993년부터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제2대 사무총장을 지내면서 한국교회 연합과 종교계의 화합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밖에 환경정책실천협의회 위원장‧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운영위원장‧미드웨스트신학대학원 이사‧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발간서로 『자양교회70년사』‧『한국기독교총연합회10년사』가 있으며, 그밖에 발간 중이던 『한국교회평신도단체협의회30년사』가 있다.
2006년 환경보존운동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슬하에 3남을 두었다.
부인은 김성희이다.
초등학교 졸업 후 전라남도 광주(光州)에서 광주농업중학교에 진학하였는데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5학년 때 학도의용병에 지원하였다. 집총법 등 간단한 훈련을 받은 뒤 낙동강(洛東江) 전투에 투입되었고, 평양(平壤) 탈환에 이어 1951년 1.4후퇴까지 학도병으로 임무를 수행하였다.
1953년 7월 27일 휴전 후에 새로 개편된 광주농업고등학교 2학년으로 들어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전남대학교 농과대학 임학과에 입학하여 농업에 관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은 다음 모교 광주농업고등학교 임학과에 부임하여 학생들에게 농업계론 등을 가르쳤다.
교직 생활을 하면서 기독교인으로서 봉사활동에 관심을 기울이던 중 기독교계 연합 사업에 더 큰 뜻을 펼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하였다.
서울 성동구(城東區) 자양교회에서 활동하다가 1991년부터는 미국 워싱턴에서 세계 각지에 흩어진 평신도들을 모아 코리아 기독교 평신도 세계협의회를 개최하고 회장직을 맡아 활동하였다.
1993년부터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제2대 사무총장을 지내면서 한국교회 연합과 종교계의 화합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밖에 환경정책실천협의회 위원장‧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운영위원장‧미드웨스트신학대학원 이사‧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발간서로 『자양교회70년사』‧『한국기독교총연합회10년사』가 있으며, 그밖에 발간 중이던 『한국교회평신도단체협의회30년사』가 있다.
2006년 환경보존운동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슬하에 3남을 두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이은영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