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수(高光壽)
[상세내용]
고광수(高光壽)
1929년 10월 5일∼1953년 7월 18일. 현대 군인. 본관은 제주(濟州)이고, 출신지는 전라남도 광주시(光州市) 양촌동(良村洞)이다.
공군사관후보생 제8기로 입교하여 교육훈련을 마치고 1950년 4월 25일 공군소위로 임관된 후 제10전투비행단에서 복무하였다. 한국군 최초의 정찰비행부대에 이어 교육부대에 배속되어 전선 정찰과 후배양성 임무를 수행하였다.
1952년 12월 중위로 강릉 전진기지에 전속돼 F-51 전투기 교육을 받은 그는 51회 출격하여, 지리산지구 공비토벌작전‧승호리 철교폭파작전‧해주-평양-원산 폭격작전 등에 참가하면서 북한군 주력부대를 무력화하는 공을 세웠다. 1953년 7월, 강원도 고성 시변리지구에 52회째 출격하였다가 북한군의 대공포에 산화하였다. 당시 비상탈출 명령을 받았으나 항공기를 지키기 위해 조종간을 놓지 않고 귀환하던 중 동해상에 추락하여 전사하였다.
정부로부터 이러한 공훈을 인정받아 1계급 특진과 을지무공훈장이 추서되었다.
공군사관후보생 제8기로 입교하여 교육훈련을 마치고 1950년 4월 25일 공군소위로 임관된 후 제10전투비행단에서 복무하였다. 한국군 최초의 정찰비행부대에 이어 교육부대에 배속되어 전선 정찰과 후배양성 임무를 수행하였다.
1952년 12월 중위로 강릉 전진기지에 전속돼 F-51 전투기 교육을 받은 그는 51회 출격하여, 지리산지구 공비토벌작전‧승호리 철교폭파작전‧해주-평양-원산 폭격작전 등에 참가하면서 북한군 주력부대를 무력화하는 공을 세웠다. 1953년 7월, 강원도 고성 시변리지구에 52회째 출격하였다가 북한군의 대공포에 산화하였다. 당시 비상탈출 명령을 받았으나 항공기를 지키기 위해 조종간을 놓지 않고 귀환하던 중 동해상에 추락하여 전사하였다.
정부로부터 이러한 공훈을 인정받아 1계급 특진과 을지무공훈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서울신문(2004.10.29.)
공군사 제1집
한국전사
공군사 제1집
한국전사
[집필자]
문혜경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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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