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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하(李仁夏)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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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925
졸년2008
시대대한민국
활동분야인권운동가/기독교인

[상세내용]

이인하(李仁夏)
1925년~2008년 6월 30일. 현대 인권운동가‧기독교인. 출신지는 경상북도 구미시(龜尾市)이다.

1940년 15세의 어린 나이에 가족을 떠나 일본으로 건너갔다. 1941년 교토[京都]의 불교계 중학교에 편입한 후 1942년 와다(和田正) 선생으로부터 영어 성경을 통해 영어교육을 받은 후, 개신교 세례를 받았다. 1945년 일제에 의해 동원된 군수공장에서 노역을 하던 중 해방을 맞았다.

이후 일본과 캐나다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1953년부터 목사활동을 시작하였다. 1959년 도쿄[東京] 근처의 가와사키[川崎] 교회에 목사로 부임하였다. 그 후 이곳에서 선교와 함께 재일동포의 취업차별‧지문날인‧일제 강점기 ‘군인‧군속’에 대한 원호법의 국적 조항 등에 대한 철폐 운동을 주도하였다.

1970년 재일동포 2세인 박종석(朴鐘碩)의 ‘히타치(Hitachi) 취업차별 사건’을 계기로 취업차별 철폐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박군을 둘러싼 모임’을 결성하고, 일본 사회에 부당함을 호소하였으며, 동시에 히타치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실행하였다. 그 결과 4년 만에 히타치의 입사 거부 철회를 받아냈다.

1990년대 이후 재일동포 문제뿐만 아니라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인권 운동에도 관심을 넓혔다. 특히, 가와사키에 중국‧브라질‧필리핀 등에서 유입되는 외국인들을 위한 복지시설 ‘후레아이관’과 복지법인 ‘청구사(靑丘社)’를 설립하였다.

이 밖에도 재일한국YMCA 부이사장을 역임하였다.

인권에 관한 수많은 저서들을 출판하였는데, 특히 『동화(同化)가 아니라 공생(共生)을』은 그의 인권에 대한 명확한 신념이 담겨있다.

그는 일본 사회에 만연해있는 차별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사회 전체에 인간이란 무엇이고 공동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였다. 또한, 소수자의 소리에 귀 기울일 때 공생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일본사회에 알렸다.

2008년 간질성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참고문헌]


[집필자]

도태수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