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준(金哲埈)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CCA0C900B1923X0 |
호(號) | 일계(一溪) |
생년 | 1923 |
졸년 | 1989 |
시대 | 대한민국 |
본관 | 당악(唐岳) |
활동분야 | 학자 > 사학자 |

부 | 김병룡(金炳瓏) |
모 | 이용덕(李龍德) |
출생지 | 평안남도 평원 |
저서 | 『일계전집(一溪全集)』 |
저술 | 『한국고대사회 연구』 |
저술 | 『한국고대국가발달사』 |
저술 | 『한국문화사론』 |
저술 | 『한국문화전통론』 |
저술 | 『국사개론』 |
공훈 | 은관문화훈장 |

[상세내용]
김철준(金哲埈)
1923∼1989. 역사학자. 본관은 당악(唐岳). 호는 일계(一溪). 평안남도 평원 출생. 목사 김병룡(金炳瓏)의 아들이며, 모친은 이용덕(李龍德)이다.
1930년 순안 의명학교(義明學校) 보통과에 입학하여 고등과를 거쳐, 1941년 일본 교토 도지중학(東寺中學) 4학년에 편입, 1943년에 졸업하였다.
1944년 평안남도 평원군의 동송국민학교(東松國民學校) 교사에 취임하여 근무중 광복을 맞았다.
1946년 단신으로 서울에 와서 서울대학교 사학과에 진학하여 1948년 8월 졸업한 뒤, 사학과의 국사연구실 조교가 되었다.
1952년 피난지인 부산에서 역사학회(歷史學會) 창립에 동참하여 발기위원회 위원과 간사로 활약하였다.
같은 해 국립박물관의 학예관을 거쳐, 1953년 단국대학교 사학과의 조교수로 취임하였으며, 1959년 연세대학교 사학과 조교수로 자리를 옮겨 1963년까지 재직하였다. 이 사이인 1960년 8월부터 1년간 미국 하버드-연경대학(哈佛-燕京學社, Harvard-Yenching Institute)에서 인류학을 연구하였다.
1945년 이후 우리 국사학계에서는 일제식민지 사학의 문헌고증학적 인식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그러한 인식이 남겨놓은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새로운 연구방법들이 모색되고 있었는데, 그의 인류학연구는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1963년 11월 서울대학교 사학과의 전임강사로 자리를 옮겨, 사학과 및 국사학과에서 조교수 부교수 교수를 거쳐 1988년 8월 정년퇴임하기까지 25년간 봉직하면서 한국사의 연구와 제자양성에 노력하였다.
1975년 「한국고대사회 연구」로 서울대학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81년 3월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소장을 거쳐 1984년 8월 인문대학장에 취임하여 1987년 7월까지 3년간 재직하였다.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진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한국학의 발전과 문화재의 보호에도 노력을 기울여 1967년 12월 한국사연구회의 창립에 참여하여 창립위원회 위원과 학회간사, 1972년 12월 대표간사를 역임하였으며, 1970년 6월부터 1988년 7월까지 18년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을 역임하였다.
1973년 1월 문화재위원회 위원을 거쳐 1986년 8월부터 2년간 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1981년 8월 학술원 회원에 피선되었다.
1978년 6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창립에 관여하여 파견근무, 연구제1부장 및 연구부장을 역임하였으며, 1988년 9월 원장으로 취임하여 재직중 과로로 1989년 1월 17일 순직하였다.
1976년 1월 박사학위 논문인 「한국고대사회 연구」로 제16회 한국출판문화상(저작 부문)을 수상하였고, 1977년 3월 제6회 외솔문화상을 수상하였다.
한편, 국학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1982년 10월 은관문화훈장, 1983년 9월 학술원상을 수상하였다.
일제 식민지사학의 잔재를 청산하고, 문헌고증학이 지닌 역사의식의 빈곤과 방법론적 한계를 극복하여 자주적이고 과학적인 새로운 학풍을 수립하고자 진력한 그의 한국사학은 고고학 인류학 불교학 등 인접분야의 학문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고대사연구에서 시작하여, 사학사와 불교사상사의 흐름을 체계화하려는 데로 이어졌다.
또 나아가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총체적 역량의 표현인 문화를 통하여 역사를 포괄적으로 이해하고자하는 문화사관을 강조하면서 과거 우리 민족의 문화의식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통해서 오늘날의 문화적 반성과 개혁방향의 기준을 설정하고자 노력하였다.
저서로는 『한국고대사회 연구』(1975), 『한국고대국가발달사』(1975), 『한국문화사론』(1975), 『한국문화전통론』(1983) 등의 연구서와 『국사개론』(1951), 『The History of Korea(Sohn & Kim & Hong)』(1970) 등의 개설서가 있으며, 「고구려 신라의 관계조직의 성립과정」(1956)「삼국시대의 예속과 유교사상」(1971) 등 50여편의 논문을 남겼다.
저서와 논문은 죽은 뒤 제자들에 의해 1990년 『일계전집(一溪全集)』(4책)으로 간행되었다.
1930년 순안 의명학교(義明學校) 보통과에 입학하여 고등과를 거쳐, 1941년 일본 교토 도지중학(東寺中學) 4학년에 편입, 1943년에 졸업하였다.
1944년 평안남도 평원군의 동송국민학교(東松國民學校) 교사에 취임하여 근무중 광복을 맞았다.
1946년 단신으로 서울에 와서 서울대학교 사학과에 진학하여 1948년 8월 졸업한 뒤, 사학과의 국사연구실 조교가 되었다.
1952년 피난지인 부산에서 역사학회(歷史學會) 창립에 동참하여 발기위원회 위원과 간사로 활약하였다.
같은 해 국립박물관의 학예관을 거쳐, 1953년 단국대학교 사학과의 조교수로 취임하였으며, 1959년 연세대학교 사학과 조교수로 자리를 옮겨 1963년까지 재직하였다. 이 사이인 1960년 8월부터 1년간 미국 하버드-연경대학(哈佛-燕京學社, Harvard-Yenching Institute)에서 인류학을 연구하였다.
1945년 이후 우리 국사학계에서는 일제식민지 사학의 문헌고증학적 인식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그러한 인식이 남겨놓은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새로운 연구방법들이 모색되고 있었는데, 그의 인류학연구는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1963년 11월 서울대학교 사학과의 전임강사로 자리를 옮겨, 사학과 및 국사학과에서 조교수 부교수 교수를 거쳐 1988년 8월 정년퇴임하기까지 25년간 봉직하면서 한국사의 연구와 제자양성에 노력하였다.
1975년 「한국고대사회 연구」로 서울대학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81년 3월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소장을 거쳐 1984년 8월 인문대학장에 취임하여 1987년 7월까지 3년간 재직하였다.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진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한국학의 발전과 문화재의 보호에도 노력을 기울여 1967년 12월 한국사연구회의 창립에 참여하여 창립위원회 위원과 학회간사, 1972년 12월 대표간사를 역임하였으며, 1970년 6월부터 1988년 7월까지 18년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을 역임하였다.
1973년 1월 문화재위원회 위원을 거쳐 1986년 8월부터 2년간 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1981년 8월 학술원 회원에 피선되었다.
1978년 6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창립에 관여하여 파견근무, 연구제1부장 및 연구부장을 역임하였으며, 1988년 9월 원장으로 취임하여 재직중 과로로 1989년 1월 17일 순직하였다.
1976년 1월 박사학위 논문인 「한국고대사회 연구」로 제16회 한국출판문화상(저작 부문)을 수상하였고, 1977년 3월 제6회 외솔문화상을 수상하였다.
한편, 국학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1982년 10월 은관문화훈장, 1983년 9월 학술원상을 수상하였다.
일제 식민지사학의 잔재를 청산하고, 문헌고증학이 지닌 역사의식의 빈곤과 방법론적 한계를 극복하여 자주적이고 과학적인 새로운 학풍을 수립하고자 진력한 그의 한국사학은 고고학 인류학 불교학 등 인접분야의 학문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고대사연구에서 시작하여, 사학사와 불교사상사의 흐름을 체계화하려는 데로 이어졌다.
또 나아가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총체적 역량의 표현인 문화를 통하여 역사를 포괄적으로 이해하고자하는 문화사관을 강조하면서 과거 우리 민족의 문화의식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통해서 오늘날의 문화적 반성과 개혁방향의 기준을 설정하고자 노력하였다.
저서로는 『한국고대사회 연구』(1975), 『한국고대국가발달사』(1975), 『한국문화사론』(1975), 『한국문화전통론』(1983) 등의 연구서와 『국사개론』(1951), 『The History of Korea(Sohn & Kim & Hong)』(1970) 등의 개설서가 있으며, 「고구려 신라의 관계조직의 성립과정」(1956)「삼국시대의 예속과 유교사상」(1971) 등 50여편의 논문을 남겼다.
저서와 논문은 죽은 뒤 제자들에 의해 1990년 『일계전집(一溪全集)』(4책)으로 간행되었다.
[참고문헌]
金哲埈博士華甲紀念史學論叢(知識産業社, 1983)
一溪全集(金哲埈, 서울대학교출판부, 1990)
一溪全集(金哲埈, 서울대학교출판부, 1990)
[집필자]
최병헌(崔柄憲)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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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