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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태(鄭成太)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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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915
졸년2000
시대항일기
본관하동(河東)
활동분야정치인

[상세내용]

정성태(鄭成太)
1915년 7월 28일~2000년 8월 17일. 현대 정치인. 본관은 하동(河東)이고, 본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鍾路區) 삼청동(三淸洞)이며, 출신지는 전라남도 광주(光州)이다.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1945년 보성전문학교의 교사였던 장덕수(張德秀)의 권유로 한국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정치에 입문하였다. 청년운동과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였으며, 사회부 감사과장‧내무부 인사과장을 지내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이후 광주상업고등학교 교장‧대한야구협회 이사를 지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1961년까지 제3~5대 민의원을 역임하였으며, 1963년 제6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민정당 원내총무를 역임하였다.

1966년 한일회담비준 파동 당시 의원직을 사퇴하여 신한당(新韓黨)을 창당하여 사무총장을 맡았고, 1967년 민중당과 합당한 신민당(新民黨) 창당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신민당에서 조직부장‧전라남도당 위원장‧정무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70년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에 선출되었고, 6선을 끝으로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1968년 박정희의 3선 개헌에 반대하여 광주에서 서울까지 걷는 ‘3선 개헌반대 천리길 헌정수호행진’을 시도하여 유명해졌으며, 야당(野黨) 생활을 하면서 시종일관 지조를 지킨 서민적인 정치인으로 평가받았다.

[참고문헌]

조선일보(1968.6.12.)

[집필자]

이후남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