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춘(朴是春)
[상세내용]
박시춘(朴是春)
1913년∼1996년 6월 30일. 현대 작곡가. 본명은 박순동(朴順童)이다. 출생지는 경상남도 밀양이다.
부친은 기생을 양성하는 권번(卷番)을 운영하던 박남포이다.
어릴 때부터 당대의 명창 송만갑(宋萬甲)‧이동백(李東伯)‧김창룡(金昌龍)‧이화중선(李花仲仙) 등의 창(唱)‧노랫가락‧판소리 등에 깊은 관심이 있었으며, 경험을 통한 실력 축적으로 일찍부터 악사로 활동하였다. 이후 전문적인 영사기사와 악사로 일하였으며, 서울에서 ‘아리랑 가무단’의 멤버가 되면서 구성 연출 및 영화감독인 홍개명(洪開明)으로부터 ‘박시춘(朴是春)’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작곡에도 재능을 보여 1936년 O.Keh레코드사에 입사하였으며, 1937년 「항구의 선술집」이 호평을 받으면서 작곡과의 인연이 본격화되어 「가거라 38선」‧「신라의 달밤」‧「삼다도(三多島) 소식」 등의 인기곡을 잇달아 발표하였다. 3,000여 곡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마지막 신곡은 1975년 방송드라마 주제곡 「돌지않는 풍차(風車)」이다.
1982년 문화훈장 보관장을 받았다.
묘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다.
부친은 기생을 양성하는 권번(卷番)을 운영하던 박남포이다.
어릴 때부터 당대의 명창 송만갑(宋萬甲)‧이동백(李東伯)‧김창룡(金昌龍)‧이화중선(李花仲仙) 등의 창(唱)‧노랫가락‧판소리 등에 깊은 관심이 있었으며, 경험을 통한 실력 축적으로 일찍부터 악사로 활동하였다. 이후 전문적인 영사기사와 악사로 일하였으며, 서울에서 ‘아리랑 가무단’의 멤버가 되면서 구성 연출 및 영화감독인 홍개명(洪開明)으로부터 ‘박시춘(朴是春)’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작곡에도 재능을 보여 1936년 O.Keh레코드사에 입사하였으며, 1937년 「항구의 선술집」이 호평을 받으면서 작곡과의 인연이 본격화되어 「가거라 38선」‧「신라의 달밤」‧「삼다도(三多島) 소식」 등의 인기곡을 잇달아 발표하였다. 3,000여 곡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마지막 신곡은 1975년 방송드라마 주제곡 「돌지않는 풍차(風車)」이다.
1982년 문화훈장 보관장을 받았다.
묘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다.
[참고문헌]
[집필자]
김성욱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