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신철(辛鐵)

[요약정보]

UCIG002+AKS-KHF_12C2E0CCA0FFFFU9999X0
이명(異名)용기(容箕)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항일기
활동분야사회 > 사회주의자
출생지경상남도 사천

[관련정보]

[상세내용]

신철(辛鐵)
생졸년 미상. 사회주의운동가. 본명은 용기(容箕). 경상남도 사천 출생.

러시아문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블라디보스토크의 동양대학에 입학하였으나 러시아중학교를 졸업한 자에 한하여 입학자격이 있다는 조건 때문에 이르쿠츠크군정학교에 입학, 졸업하였다.

1923년 4월 코르뷰로의 공작원으로 서울에 들어와서 김재봉(金在鳳)과 더불어 국내의 유력인사인 신백우(申伯雨)윤덕병(尹德炳)원우관(元友觀, 일명 貞龍)이영(李英)김유인(金裕寅)임봉순(任鳳淳) 등과 공산주의운동의 비밀결사조직에 착수하였다.

이 두사람은 1923년 6월 서울청년회계를 제외한 이봉수(李鳳洙)김약수(金若水)김찬(金燦)김재봉신백우원우관 등 화요회(火曜會)와 북풍회(北風會)의 계열만으로 코르뷰로 국내부(國內部)를 조직하고 이를 당(黨)과 공청(共靑)으로 양분하여 신철은 공청책임비서가 되었다.

이 일로 1923년 9월 종로경찰서에 붙잡혔으나 10월에 석방되었다. 지하조직인 코르뷰로의 공청책임비서로 활약하면서, 한편으로는 1924년 2월 박헌영(朴憲永)임원근(林元根)김단야(金丹冶) 등과 신흥청년동맹(新興靑年同盟)을 조직하여 중앙위원이 되어 활동하였으나 공청에서는 그를 사보타즈 이유로 제명하였다.

그뒤 합법조직인 북풍회의 활동가로 행세하면서 지하조직을 지도하였다.

[참고문헌]

韓國共産主義運動史 1(金俊燁‧金昌順, 高麗大學校亞細亞問題硏究所, 1967)

[집필자]

김창순(金昌順)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