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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삼규(白三圭)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BC31C0BCADDCD1920X0
자(字)현복(賢復)
호(號)온당(溫堂)
생년?(미상)
졸년1920
시대항일기
활동분야호국 > 독립운동가
출신지평안북도 태천
공훈건국훈장 국민장

[상세내용]

백삼규(白三圭)
미상∼1920년. 독립운동가. 자는 현복(賢復), 호는 온당(溫堂). 평안북도 태천 출신.

1895년(고종 32) 명성황후(明成皇后) 민씨(閔氏)가 일제에 의해 시해당하자 의병장 유인석(柳麟錫)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항쟁하였다.

1910년 국권이 침탈되자 남만주로 망명하여 봉천성 유하현 삼원보(奉天省柳河縣三源堡)에서 조병준(趙秉準) 등과 함께 관전현(寬甸縣)환인현(桓仁縣)을 근거로 농무계(農務契)와 향약계(鄕約契)를 조직하여 애국청년들에게 군사훈련을 시키는 한편, 항일의식을 심어주었다.

3‧1운동 후 조맹선(趙孟善) 등과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을 조직하여 부총재로서 만주 각 현에 독립지단을 조직, 강화하였다.

또한, 일제의 주구기관인 보민회(保民會)‧일민단(日民團)‧강립단(强立團) 등을 숙청하는 등의 항일활동을 전개하였으며, 박장호(朴長浩)전덕원(全德元)이웅해(李熊海)김평식(金平植) 등과 기원독립단(紀元獨立團)을 이끌었다.

1920년 일본군이 관전현 향로구(香爐溝)에 있는 우리 청년단을 습격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청산구(靑山溝)에 갔다가 일본군에게 잡혀 환인현에서 총살당하여 순국하였다.

그뒤 장남 인해(仁海), 차남 인제(仁濟)도 순국하였다.

1968년에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抗日殉國義烈士傳(吳在植, 行政新聞社, 1959)
韓國獨立運動史 3(國史編纂委員會, 1967)
大韓民國獨立運動功勳史(金厚卿‧申載洪, 韓國民族運動硏究所, 1971)
독립운동사 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집필자]

김광남(金光男)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