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엽(金俊燁)
[상세내용]
김준엽(金俊燁)
1920년 8월 26일~2011년 6월 7일. 현대 애국지사‧교육가. 본관은 충주(忠州)이고, 출신지는 평안북도 강계군(江界郡)이다.
1944년 일본 게이오[慶應大]대학교 동양사학과에 입학하였으나, 대학교 2학년 때, 일본군 학도병으로 강제 징집되어 학교를 중퇴하였다. 이후 일본군을 탈출하여 중국유격대에 입대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미국전략정보사무국(OSS)에서 훈련을 받고, 독립운동 진영에 참가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중경 한국임시정부에서 광복군 이청천(李靑天) 장군 부관과 이범석(李範奭)장군 부관으로 활동하였다. 광복군으로 활동하던 당시 광복군 주요 인사들의 부관으로 활동하는 등 광복군의 중추적인 활동을 하였다. 광복 이후에는 사학계에서 명망 높은 학자이자 국제 업무에 능통한 관리로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였다.
광복 후 1946년부터 1949년까지 중국 난징[南京] 국립동방어전문학교 전임강사를 지내다가 1949년 귀국하여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가 되었다. 1957년부터 고려대학교 부설 아세아문제연구소 소장을 지냈으며, 1958년엔는 미국 하버드대학교(Harvard University Herbaria) 객원교수로 연구활동을 하였다. 1961년 제16차 UN(United nations) 총회 한국대표로 참석하였으며, 1968년 미국 프린스턴대학교(Princeton university) 교환교수로 연구활동을 하였다. 1971년 UN한국협회 이사를 역임하였고, 1972년에는 남북적십자회단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82년부터 1985년까지 고려대학교 제9대 총장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한국공산주의 운동사』‧『중국최근세사』‧『중국공산당사』‧『중공권의 장래』‧『중공과 아시아』‧『장정』‧『석린민필호전』‧『나와 중국』 등이 있고, 5권의 역서가 있다.
독립운동에 대한 공훈과 사회‧교육활동에 대한 공로로 국민훈장동백장‧국민훈장모란장‧건국포장‧건국훈장애국장‧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묘소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이다.
1944년 일본 게이오[慶應大]대학교 동양사학과에 입학하였으나, 대학교 2학년 때, 일본군 학도병으로 강제 징집되어 학교를 중퇴하였다. 이후 일본군을 탈출하여 중국유격대에 입대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미국전략정보사무국(OSS)에서 훈련을 받고, 독립운동 진영에 참가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중경 한국임시정부에서 광복군 이청천(李靑天) 장군 부관과 이범석(李範奭)장군 부관으로 활동하였다. 광복군으로 활동하던 당시 광복군 주요 인사들의 부관으로 활동하는 등 광복군의 중추적인 활동을 하였다. 광복 이후에는 사학계에서 명망 높은 학자이자 국제 업무에 능통한 관리로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였다.
광복 후 1946년부터 1949년까지 중국 난징[南京] 국립동방어전문학교 전임강사를 지내다가 1949년 귀국하여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가 되었다. 1957년부터 고려대학교 부설 아세아문제연구소 소장을 지냈으며, 1958년엔는 미국 하버드대학교(Harvard University Herbaria) 객원교수로 연구활동을 하였다. 1961년 제16차 UN(United nations) 총회 한국대표로 참석하였으며, 1968년 미국 프린스턴대학교(Princeton university) 교환교수로 연구활동을 하였다. 1971년 UN한국협회 이사를 역임하였고, 1972년에는 남북적십자회단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82년부터 1985년까지 고려대학교 제9대 총장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한국공산주의 운동사』‧『중국최근세사』‧『중국공산당사』‧『중공권의 장래』‧『중공과 아시아』‧『장정』‧『석린민필호전』‧『나와 중국』 등이 있고, 5권의 역서가 있다.
독립운동에 대한 공훈과 사회‧교육활동에 대한 공로로 국민훈장동백장‧국민훈장모란장‧건국포장‧건국훈장애국장‧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묘소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이다.
[참고문헌]
경향신문(2011.06.07)
[집필자]
도태수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