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율성(鄭律成)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815C728C131B1918X0 |
| 초명(初名) | 정부은 |
| 이명(異名) | 유대진(劉大振) |
| 생년 | 1918 |
| 졸년 | 1976 |
| 시대 | 항일기 |
| 본관 | 하동(河東) |
| 활동분야 | 호국 > 독립운동가 |


[상세내용]
정율성(鄭律成)
1918년∼1976년.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음악가. 아명(兒名)은 정부은이고, 다른 이름은 유대진(劉大振)이다. 본관은 하동(河東)(주1)
. 출신지는 전라남도 광주(光州)이다.
형 정남근‧정인제‧정의은 모두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였다.
숭일학교와 전주 신흥중학교를 졸업하고, 1933년 중국 남경(南京)으로 건너가 의열단의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졸업한 뒤 중국에서 음악공부에 매진하였다. 1930년대 중반부터 조선민족해방동맹(朝鮮民族解放同盟)에 가담하여 항일운동에 주력하였다. 1939년 1월 중국공산당에 입당한 뒤 「연안송가(延安頌歌)」와 「팔로군행진곡(八路軍行進曲)」 등의 곡을 만들며 음악활동과 항일운동을 함께 전개하였다.
해방 후 북쪽으로 귀국하여 「3‧1행진곡」 등의 노래를 작곡하였다.
| 본관 |
| 정율성 기념사업회 "제적등본"을 참고하여 본관을 하동(河東)으로 추가함. |
형 정남근‧정인제‧정의은 모두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였다.
숭일학교와 전주 신흥중학교를 졸업하고, 1933년 중국 남경(南京)으로 건너가 의열단의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졸업한 뒤 중국에서 음악공부에 매진하였다. 1930년대 중반부터 조선민족해방동맹(朝鮮民族解放同盟)에 가담하여 항일운동에 주력하였다. 1939년 1월 중국공산당에 입당한 뒤 「연안송가(延安頌歌)」와 「팔로군행진곡(八路軍行進曲)」 등의 곡을 만들며 음악활동과 항일운동을 함께 전개하였다.
해방 후 북쪽으로 귀국하여 「3‧1행진곡」 등의 노래를 작곡하였다.
[참고문헌]
불멸의 노래와 더불어(중국의 광활한 대지 우에서, 연변인민출판사, 1987)
關內地區朝鮮人反日獨立運動資料彙編 下(楊昭全 等編, 遼寧人民出版社, 瀋陽, 1987)
思想情勢視察報告集(其の二)(社會問題資料硏究會 編)
關內地區朝鮮人反日獨立運動資料彙編 下(楊昭全 等編, 遼寧人民出版社, 瀋陽, 1987)
思想情勢視察報告集(其の二)(社會問題資料硏究會 編)
[집필자]
김성욱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