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영(朴華英)
[상세내용]
박화영(朴華英)
1915년∼1941년 3월 13일.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이명(異名)은 박화영(朴花榮)이다. 본적은 평안남도 맹산군(孟山郡)이다.
1934년 일본으로 유학하여, 교토[京都]에 소재한 사가[佐賀]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이유호(李有浩)‧임두성(林斗成) 등의 권유로 혁신주의연구회(革新主義硏究會)에 가담하였다. 선배들로부터 혁신주의에 입각한 민족이론에 대한 교육을 받고, 조국독립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의식계몽과 민족의식을 고취에 전념하였다.
1939년 도쿄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 현 도쿄대학교]에 입학하여, 공학부에서 수학하였다. 재학 중 동문 출신의 학생 및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교토대학[京都大學] 학생들과 연합하여 비밀리에 모임을 가지며 혁신주의 민족이론을 전파하는데 힘썼다.
1940년 10월에 이러한 조직 활동이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심문 중 받은 모진 고문으로 말미암아 순국하였다.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1995년에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愛國章)이 추서되었다.
1934년 일본으로 유학하여, 교토[京都]에 소재한 사가[佐賀]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이유호(李有浩)‧임두성(林斗成) 등의 권유로 혁신주의연구회(革新主義硏究會)에 가담하였다. 선배들로부터 혁신주의에 입각한 민족이론에 대한 교육을 받고, 조국독립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의식계몽과 민족의식을 고취에 전념하였다.
1939년 도쿄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 현 도쿄대학교]에 입학하여, 공학부에서 수학하였다. 재학 중 동문 출신의 학생 및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교토대학[京都大學] 학생들과 연합하여 비밀리에 모임을 가지며 혁신주의 민족이론을 전파하는데 힘썼다.
1940년 10월에 이러한 조직 활동이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심문 중 받은 모진 고문으로 말미암아 순국하였다.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1995년에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愛國章)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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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