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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채(朴準埰)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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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號)해촌(海村)
생년1914
졸년2001
시대항일기
본관밀양(密陽)
활동분야애국지사

[상세내용]

박준채(朴準埰)
1914년 6월 28일~2001년 3월 7일. 일제 강점기 애국지사.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호는 해촌(海村)이다. 본적과 출생지는 전라남도 나주시(羅州市) 남내동(南內洞)이다.

부인은 김정옥(金貞玉)이다.

1929년 10월 광주고등보통학교 2학년 때 광주에서 나주로 향하는 통학열차에서 일본인 학생들이 사촌누나 박기옥(朴己玉) 등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을 희롱하는 것을 보고 일본 학생들과 시비가 붙었다. 이 사건이 발단이 되어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그 주동자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개월간 수감되었으며, 학교에서 퇴학당하였다. 이후 서울 양정고등보통학교로 전학하였고,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1939년 와세다[早稻田]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하였다.

이후 1939년부터 조흥은행(주) 목포지점에서 근무하였고, 1960년부터는 조선대학교 법정대학에서 재직하였다. 1973년부터 1977년까지 조선대학교 법학대학 학장과, 1977년부터 1979년까지 조선대학교 여대 학장을 지냈다. 또한, 1979년부터 1988년까지 조선대학교 대학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사촌누나 박기옥과 함께 일제 강점기 광주학생운동의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1962년 대통령 표창, 1988년 국민훈장 석류장,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2001년 향년 8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슬하에 5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박영근(朴榮根)‧박형근(朴亨根)‧박삼근이다.

묘소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이다.

주요 저술로 『경제지리학』‧『한국화폐제도사연구』 등이 있다.

[참고문헌]

국민일보(2001.3.8)
동아일보(2001.3.7)

[집필자]

차호연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