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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애(姜敬愛)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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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907(융희 1)
졸년1943
시대항일기
활동분야문학 > 소설가
출신지황해도 송화

[상세내용]

강경애(姜敬愛)
1907년∼1943년. 현대 여류소설가. 황해도 송화 출신. 어릴 때 부친을 여읜 뒤 모친의 개가로 일곱살에 장연으로 이주하였다.

1925년 형부의 도움으로 평양 숭의여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했으나 중퇴하고, 서울동덕여학교에 편입하여 약 1년간 수학하였다. 이 무렵 문학적인 재질을 높이 평가한 양주동(梁柱東)과 동거했으나 곧 헤어졌다.

1932년에 장하일(張河一)과 결혼하고 간도에 가서 살면서 작품활동을 계속했다. 한때 『조선일보』 간도지국장을 역임하기도 했으나, 차츰 나빠진 건강으로 1942년 남편과 함께 간도에서 귀국하여 요양하던 중 죽었다.

1931년 『조선일보』에 단편소설 「파금(破琴)」을, 그리고 같은 해 장편소설 「어머니와 딸」을 『혜성』 (1931)과 『제일선』 (1932)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하여, 단편소설 「부자」(1933)‧「채전(菜田)」(1933)‧「지하촌」(1936) 등과 장편소설 「소금」(1934)‧「인간문제」(1934) 등으로 1930년대 문단에 독특한 위치를 확보한 작가이다.

어려운 살림살이와 병고, 그리고 중앙문단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준열한 작가정신으로 식민지 한국의 빈궁문제를 작품화하는 데 힘썼다.

일련의 작품 가운데서도 특히 「인간문제」와 「지하촌」은 특이한 작가의 한 사람으로 지목하게 한 문제작이다. 전자는 사회의 최하층에 속해 있는 여인의 비극적 생애를 그린 것으로서, 후자는 극한적인 빈궁 속에서 사람의 삶이 얼마만큼 비참해질 수 있나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었다. 이렇듯 당시의 극한적인 빈궁상이라는 사회적 모순을, 특히 그 나름의 사실적 기법으로 상세히 묘사한 점에서 그의 작품세계는 누구도 넘보지 못할 1930년대 문학의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밖에 주요작품으로는 단편 「축구전(蹴球戰)」(1933)‧「유무(有無)」(1934)‧「모자(母子)」(1935)‧「원고료이백원」(1935)‧「해고(解雇)」(1935)‧「산남(山男)」(1936)‧「어둠」(1937) 등이 있다.

[참고문헌]

韓國現代小說史(李在銑, 弘盛社, 1979)
韓國近代小說論攷(李慶彦, 螢雪出版社, 1983)
姜敬愛論(李揆姬, 梨花女子大學校大學院, 1974)
姜敬愛硏究(安淑元, 西江大學校大學院, 1976)

[집필자]

채훈(蔡壎)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