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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洪疇)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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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897(광무 1)
졸년1954
시대항일기
활동분야호국 > 독립운동가
홍제업(洪濟業)
출신지평안북도 의주
공훈건국훈장 국민장

[상세내용]

홍주(洪疇)
1897년∼1954년.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의주 출신.

1919년 의주에서 3‧1운동 참가 후 아버지 홍제업(洪濟業)과 같이 만주로 망명,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하고 재무부장 전덕원(全德元)휘하에서 회계를 맡아 활약하였다. 같은해 5월 상해(上海)에서 개최된 의정원의회(議政院議會)에 이춘숙(李春塾)장도정(張道政)한위건(韓偉健)임봉래(林鳳來) 등과 같이 함경도 대표로 참석하였고, 6월에는 대한독립단 해상전권위원(海上專權委員)으로 임명되어 국내에 해륙교통기관 설치 및 일제의 행정기관 파괴 임무를 띠고 국내 총지단장(總支團長)인 아버지 제업과 같이 입국, 고향인 의주에 잠입하여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동지규합에 힘썼다.

같은해 7월 평양 시가전에서 일본경찰을 사살하는 등 큰 전과를 거둔 백운한(白雲翰)을 맞아 의주 지방의 친일파 숙청에 적극 협조하였으며, 이후 계속되는 일본경찰의 감시 때문에 의주를 탈줄하여 만주의 본단으로 돌아갔다.

1920년 6월 윤세용(尹世茸)의 주선으롱 지희종(池熙鍾)이 제공하는 자금을 받아 봉천성(鳳天城)에서 다량의 무기를 구입하여 무장군을 재편성, 단전체에 큰 활기와 도움을 주었다.

1921년 3‧4월 김상률(金相律)김형모(金亨模)한봉조(韓鳳朝)김은순(金恩淳) 등과 함께 압록강 유초도(柳草島)에 있으면서 안동현(安東縣)의 일본영사관과 은행을 습격하려고 교통국장 백승서(白承瑞)와 협의하던 중 일본경찰의 포위공격으로 백승서는 체포되고 다른 단원들은 밀선으로 탈출하였다.

1923년 8월 참의부(參議府)고문에 취임하여 활약하였으며, 1925년 3월 집안현(輯安縣: 지금의 集安) 고마령(古馬嶺) 산곡에서 국내의 일본 주요기관을 파괴하기 위한 작전계획을 수립하던 중 일본경찰대의 습격을 받아 참의장(參議長) 최석순(崔碩淳) 등 29명은 전사하고, 다른 대원들과 함께 붙잡혀 신의주 지방법원에서 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마포형무소에서 복역 만기로 출감하였다.

8‧15광복 후 북한에서 한국독립운동사 편찬위원회를 조직하고 『한국독립운동사』를 집필하다가 공산당의 탄압을 받고 월남하였다.

그뒤 서울에서 3‧1혁명동지회를 조직하고 총무부장에 취임하여 민족정기를 앙양하며 사료를 수집하였다.

6‧25사변으로 인하여 부산으로 피난가서 애국동지원호회를 조직하고 문화부장에 취임하여 김승학(金承學)과 같이 『한국독립운동사』를 집필 교정하던 중 1954년 5월 부산에서 죽었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韓國獨立運動史(愛國同志援護會, 1956)
독립운동사 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大韓民國獨立運動功勳史(金厚卿, 光復出版社, 1983)
獨立有功者功勳錄 4(國家報勳處, 1987)

[집필자]

이상태(李相泰)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