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서병인(徐炳寅)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11CBCD1C778B1896X0
생년1896(건양 1)
졸년?(미상)
시대항일기
활동분야사회 > 사회주의자

[상세내용]

서병인(徐炳寅)
1896년(건양 1)∼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무안(務安)이다.

전라남도 목포(木浦)상업학교에서 2년 동안 수학한 후 면화(棉花)중개업을 하였다.

1925년부터 목포청년회와 목포전위동맹 간부‧목포면업노동조합 이사‧무안노동연맹 경리부위원‧목포노동총동맹 상무집행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27년 7월 19일 반일통일전선조직인 신간회(新幹會) 목포지회 주최의 강연회가 열린 목포극장에서 1천여 명의 관중 앞에서 ‘현실에서 본 나의 고찰(考察)’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하였다. 8월에 입당한 조선공산당에서 목포야체이카 소속으로 활동하였다.

1928년 2월 조선공산당 전남도책을 맡아 활동 하던 중, 조선공산당 탄압 사건으로 체포되어 2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1932년 5월 ‘전남노농협희회사건(全南勞農協議會事件)’ 때 전창호(全昌浩)‧김용길(金龍吉) 등과 함께 광주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바로 풀려났다.

1933년 10월 사회주의사상을 실은 잡지 『신세기(新世紀)』를 발행한 죄로 목포 경찰에 체포되었다.

1945년 11월에 개최된 전국인민위원회에 서울시 대표 자격으로 참석하였으며, 12월에 개최된 전국농민조합총연맹 결성대회에 중앙준비위원 대위원 자격으로 참석하였다.

1946년에 결성된 민주주의민족전선 중앙위원과 민주주의민족전선 서울시부 재정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동아일보(1933.10.12) 외

[집필자]

이원배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