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선(李明善)
[상세내용]
이명선(李明善)
1893년(고종 30)∼1932년.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황해도 장연군(龍淵郡) 용연면(龍淵面)이다.
신민회(新民會)에서 만주독립기지건설을 추진하기 위한 계획을 세울 때, 황해도 책임자였던 김구(金九) 선생으로부터 합류할 것을 지시 받고 1910년(융희 4) 친형 이명서(李明瑞)를 따라 모친을 모시고 간도로 망명하였다. 그러나 김구 선생이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합류에 실패하였다.
1919년 중국 동북삼성(東北三省)을 중심으로 한 비밀결사 단체인 소년단(少年團)이 결성되었고, 팔면둔(八面屯)의 지부단장으로 선임되어 활약하였다.
1924년에는 이진무(李振武)를 따라 김정(金晶)‧강옥성(姜玉成)‧나정규(羅正奎)‧김지섭(金志涉)‧김영걸(金永杰)‧차지초(車之初)‧조희찬(趙凞贊) 등과 함께 평안북도 창성군(昌城郡)에 침투하여 의열투쟁을 벌였으며, 이때 일본 경찰과 총격을 벌였다.
만주와 국내를 오가며 독립운동을 벌였으나 만주전쟁으로 인해 일본군의 탄압이 점점 심해지고, 활동에 큰 제약을 받게 되자 울분을 못 이기고 화병으로 순국하였다.
1990년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신민회(新民會)에서 만주독립기지건설을 추진하기 위한 계획을 세울 때, 황해도 책임자였던 김구(金九) 선생으로부터 합류할 것을 지시 받고 1910년(융희 4) 친형 이명서(李明瑞)를 따라 모친을 모시고 간도로 망명하였다. 그러나 김구 선생이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합류에 실패하였다.
1919년 중국 동북삼성(東北三省)을 중심으로 한 비밀결사 단체인 소년단(少年團)이 결성되었고, 팔면둔(八面屯)의 지부단장으로 선임되어 활약하였다.
1924년에는 이진무(李振武)를 따라 김정(金晶)‧강옥성(姜玉成)‧나정규(羅正奎)‧김지섭(金志涉)‧김영걸(金永杰)‧차지초(車之初)‧조희찬(趙凞贊) 등과 함께 평안북도 창성군(昌城郡)에 침투하여 의열투쟁을 벌였으며, 이때 일본 경찰과 총격을 벌였다.
만주와 국내를 오가며 독립운동을 벌였으나 만주전쟁으로 인해 일본군의 탄압이 점점 심해지고, 활동에 큰 제약을 받게 되자 울분을 못 이기고 화병으로 순국하였다.
1990년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유치석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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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