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김영철(金榮哲)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AE40C601CCA0B1892X0
이명(異名)김영철(金泳喆)
생년1892(고종 29)
졸년?(미상)
시대항일기
활동분야호국 > 독립운동가
출신지평안북도 영변
공훈건국훈장 국민장

[상세내용]

김영철(金榮哲)
1892년(고종 29)∼미상.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영변 출신. 일명 김영철(金泳喆). 대한제국 군인으로 복무하다가 1907년 군대해산 후 남만주로 망명하였다.

1919년 관전현(寬甸縣)에서 대한청년연합회의용대(大韓靑年聯合會義勇隊)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대한독립단과 합류하고, 다시 광복군총영에 입대하여 결사대장이 되었다.

1920년 9월 미국 의원단이 내한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국내의 일제 주요기관을 폭파하고 일본 고관들을 암살하라는 광복군총영장 오동진(吳東振)의 명령을 받고 김성택(金聖澤)김최명(金最明)과 같이 무기를 소지하고 국내에 잠입하였다.

이해 8월 16일 친일분자인 자성군수를 살해하고 곧 황해도 장연으로 가서 장연군수도 살해하였다. 이 두 사건으로 일본경찰의 감시와 경계가 엄해지자 함경도로 가서 베상인으로 가장하고 서울에 잠입, 청진동 이승도(李昇道)의 집에 유숙했다.

1920년 8월 21일 아서원(雅敍園)에서 조선총독부‧남대문역‧종로경찰서 등을 폭파할 계획을 세우고 거사에 대한 모의를 하던 중,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경성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언도받고 복역, 1929년 10월에 만기출옥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독립운동사 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大韓民國獨立運動功勳史(金厚卿, 光復出版社, 1983)

[집필자]

이상태(李相泰)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