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구자옥(具滋玉)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AD6CC790C625B1890X0
이명(異名)구가자옥(具家滋玉)
생년1890(고종 27)
졸년1950
시대항일기
활동분야종교 > 기독교인

[상세내용]

구자옥(具滋玉)
1890년(고종 27) 3월 30일∼1950년. 일제 강점기 기독교인‧정치인. 창씨한 이름은 구가자옥(具家滋玉)이다. 본적은 서울 종로구(鍾路區) 청진동(淸進洞)이다.

1909년(융희 3) 관립한성외국어학교 졸업 후, 감리교 협성신학교와 임시토지조사국 기술원양성소 측량과를 다녔다. 1920년을 전후한 시기에 일본 동경 청산학원 신학부를 다니다 중퇴하고, 미국 시카고로 건너가 기독교청년회에서 수학하였다.

귀국 후 1924년부터 1935년까지 조선체육회 임원‧상무위원‧이사를 지냈으며, 겸임으로 1925년부터 1937년까지 조선기독교창문사 감사 및 대주주를 지냈고, 신간회 경성지회에서도 활동하였다.

1929년과 1935년에는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YMCA) 총무가 되었고, 1938년에는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 기관지 『청년』의 편집 겸 발행인으로 활약하였다.

1938년 5월 흥업구락부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으나, 흥업구락부 회원 54명 모두 사상전향성명서를 연명으로 발표하고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이후 내선일체를 실천하기 위해 황도사상을 학습 보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황도학회 이사를 역임하였고,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 및 이사로 참여하거나 임전대책협력회 활동을 통해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조하였다.

1942년에는 일본과 조선의 기독교인들이 연합하여 만든 최초의 친일단체로 종교 활동을 통한 황민화를 목표로 한 조선기독교연합회 중앙위원으로도 활약하였다.

광복 직후에는 백남훈‧김도연 등과 함께 한국민주당을 창당하여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하였으며, 미군정 하에서 초대 경기도지사를 지냈다.

6‧25 전쟁 중 피랍되었는데, 강계 부근에서 사망하였다고 전해진다.

[참고문헌]

대한민국인사록(1949년)
조선은행회사조합요록(1937)
기독교신문(1942.4.29) 외
동아일보(1929.5.6) 외
매일신보(1938.5.8) 외
시대일보(1924.9.29) 외

[집필자]

이승윤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