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익(金天益)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AE40CC9CC775B1890X0 |
| 생년 | 1890(고종 27) |
| 졸년 | 1921 |
| 시대 | 항일기 |
| 활동분야 | 호국 > 독립운동가 |

| 부 | 김병두(金炳斗) |
| 출신지 | 평안남도 평원 |
| 공훈 | 건국훈장 국민장 |

[상세내용]
김천익(金天益)
1890년(고종 27)∼1921년.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평원 출신. 김병두(金炳斗)의 맏아들.
1912년 국권회복의 뜻을 품고 만주로 갔으며, 1914년 봉천성 통화현(奉天省通化縣)의 군무교련소(軍務敎鍊所)에 들어가 교육을 받았다.
1916년까지 한족회(漢族會)검찰원으로 있었으며, 1919년 신흥학교(新興學校)속성과를 졸업하였다.
3‧1운동 후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에 가담하여 집안현(輯安縣)본부에서 활동하였다.
1920년 일본군이 남‧북만주에 산재한 독립군에 대한 군사작전을 전개하자, 잠시 산중에 피신하여 항쟁의 기틀을 다졌다.
1921년 7월 봉천성 유하현 삼원포(柳河縣三源浦)에 출동하였던 동지 김련(金連)‧차병조(車秉曺)‧강진상(姜鎭祥) 등이 유하현 파출소의 일본경찰 다마이(玉井)에게 붙잡혀 압송되자, 이를 구출하기 위해 차용륙(車用陸)과 매복, 대기하였으나 실패하고 철수하던 중, 행인의 밀고로 출동한 일본경찰과 교전하다가 전사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1912년 국권회복의 뜻을 품고 만주로 갔으며, 1914년 봉천성 통화현(奉天省通化縣)의 군무교련소(軍務敎鍊所)에 들어가 교육을 받았다.
1916년까지 한족회(漢族會)검찰원으로 있었으며, 1919년 신흥학교(新興學校)속성과를 졸업하였다.
3‧1운동 후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에 가담하여 집안현(輯安縣)본부에서 활동하였다.
1920년 일본군이 남‧북만주에 산재한 독립군에 대한 군사작전을 전개하자, 잠시 산중에 피신하여 항쟁의 기틀을 다졌다.
1921년 7월 봉천성 유하현 삼원포(柳河縣三源浦)에 출동하였던 동지 김련(金連)‧차병조(車秉曺)‧강진상(姜鎭祥) 등이 유하현 파출소의 일본경찰 다마이(玉井)에게 붙잡혀 압송되자, 이를 구출하기 위해 차용륙(車用陸)과 매복, 대기하였으나 실패하고 철수하던 중, 행인의 밀고로 출동한 일본경찰과 교전하다가 전사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韓國獨立運動史(愛國同志援護會, 1956)
抗日殉國義烈士傳(吳在植, 行政新聞社, 1959)
大韓民國獨立運動功勳史(金厚卿‧申載洪, 韓國民族運動硏究所, 1971)
抗日殉國義烈士傳(吳在植, 行政新聞社, 1959)
大韓民國獨立運動功勳史(金厚卿‧申載洪, 韓國民族運動硏究所, 1971)
[집필자]
김광남(金光男)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