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표(洪南杓)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64DB0A8D45CB1888X0 |
이명(異名) | 유포심(劉怖深) |
이명(異名) | 진덕삼(陳德三) |
이명(異名) | 이극화(李克和) |
이명(異名) | 김지강(金志剛) |
생년 | 1888(고종 25) |
졸년 | 1950 |
시대 | 항일기 |
활동분야 | 사회 > 사회주의자 |
[상세내용]
홍남표(洪南杓)
1888년(고종 25)∼1950년.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다른 이름은 유포심(劉怖深)‧진덕삼(陳德三)‧이극화(李克和)‧김지강(金志剛)이다. 출생지는 경기도 양평(楊平)이다.
서울에서 중앙학교를 졸업하고, 1919년 자유단이 형성될 때 참여하여 『자유보』를 발간하였다. 1925년 조선공산당 설립에 참여하여 중앙위원회 후보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26년 6‧10만세운동에 동참하였다가 일제의 검거망을 피해 중국 상해로 건너갔다. 1930년 중국공산당 상해한인지부 책임자가 되었고, 1932년 조선공산당 재건을 위해 힘쓰다가 체포되었다. 출옥 후 1943년 조선공산주의자회에서 활동하다가 다시 체포되었다가 풀려나 1946년 남조선노동당 중앙위원을 지냈으나 미군군정에 체포되었다. 이후 월북하여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서울에서 중앙학교를 졸업하고, 1919년 자유단이 형성될 때 참여하여 『자유보』를 발간하였다. 1925년 조선공산당 설립에 참여하여 중앙위원회 후보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26년 6‧10만세운동에 동참하였다가 일제의 검거망을 피해 중국 상해로 건너갔다. 1930년 중국공산당 상해한인지부 책임자가 되었고, 1932년 조선공산당 재건을 위해 힘쓰다가 체포되었다. 출옥 후 1943년 조선공산주의자회에서 활동하다가 다시 체포되었다가 풀려나 1946년 남조선노동당 중앙위원을 지냈으나 미군군정에 체포되었다. 이후 월북하여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북조선 정치활동가에 대한 평가서(레베제프, 1948)
[집필자]
김혜영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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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