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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화(宋文華)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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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산목문화(山木文華)
생년1886(고종 23)
졸년?(미상)
시대항일기
활동분야관료

[상세내용]

송문화(宋文華)
1886년(고종 23) 12월 18일∼미상. 일제 강점기 관료. 창씨 개명한 이름은 산목문화(山木文華)이다. 본적은 경성부(京城府: 현 서울) 종로구(鍾路區) 통의동(通義洞)이다.

1906년 여주일신학교(驪州日新學校) 보조원으로 있다가, 1910년(융희 4)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1910년 4월부터 1920년까지 하동공립보통학교(河東公立普通學校)‧성주공립보통학교(星州立普通學校)‧이천공립보통학교(利川立普通學校)에서 부훈도(副訓導)로 근무하다가, 1920년 8월 경기도 학무과 서기가 되어 4년 이상 근무하였다.

1924년부터 1937년까지는 경기도의 강화(江華)‧광주(廣州)‧양주(楊州)‧수원(水源) 지역의 군수를 역임하였으며, 1937년 11월부터 1941년 5월까지는 경기도 개성부윤(開城府尹)을, 1938년부터는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國民精神總動員朝鮮聯盟) 개성지부 이사장‧조선방공협회(朝鮮防共協會) 개성지부 평의원, 1941년 평안북도 참여관과 사무관‧평안북도 지방미곡통제조합 연합회장직 등을 역임하였다.

그 후 1942년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참의(中樞院參議)에까지 올라 광복 때까지 임시지원병제 익찬위원회(臨時志願兵制翼贊委員會) 위원‧조선총독부 경제안정대책위원회 위원직을 역임하면서 각 방면으로 다양한 활동에 종사하였으나, 1950년 한국전쟁 중 실종되어 납북된 것으로 추정되며 생사를 알 수 없다.

조선총독부의 고위관료로 재직하면서 일본에 협조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정부로부터 1912년 한국병합기념장, 1928년 쇼와[昭和]대례기념장, 1932년 조선소화5년국세조사기념장(朝鮮昭和五年國勢調査記念章), 1931년 훈6등 서보장(瑞寶章), 1936년 훈5등 서보장 등을 받았다. 특히 1940년 경기도 개성부윤으로 중일전쟁에 필요한 각종 군수물자의 공출과 국방사상 보급에 대한 공로로 훈5등 쌍광욱일장(雙光旭日章)을 받았다.

[참고문헌]

관보(1910.5.2)
일본내각 관보(1944.3.18)
조선총독부관보(1911.4.25) 외
경성일보(1938.10.3) 외
대한매일신보(1906.11.13)
조선인사흥신록(1935) 등

[집필자]

도승현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